[데스크 칼럼] 투자자 보호 위해 '수탁거부권' 담으면?
[데스크 칼럼] 투자자 보호 위해 '수탁거부권' 담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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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에 판매된 홍콩H지수 연계증권(ELS)이 만기를 앞두고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커지면서 문제가 확산하고 있다. 이미 납입금액 5조원 규모의 상품들이 손실 구간에 진입했고, 이대로 H지수가 회복하지 못한다면 원금을 까먹은 명세서들이 하나둘 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은 ELS 상품의 불완전판매 문제를 지적하며 제재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사들은 불완전판매가 확인된 상품들에 대해서는 손실 금액에 대한 보상도 염두에 둬야 한다.

나이나 성별을 막론하고 누구든 투자 상품에 가입할 때 듣는 말이 있다. "투자의 결정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있으며, 그 손익에 대한 책임도 본인에게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이익은 본인 책임이지만, 손실은 금융사에 책임이 있습니다."

누군들 손실이 예상됐거나 예상되는 상황에서 상품을 팔고 싶을까. 더군다나 지금 문제가 된 상품이 판매된 시기는 2021년 상반기. 2020년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옵티머스 등으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실제로 당시 ELS 발행 규모는 35조5810억원으로 2019년 상반기(47조6588억원)에 비해 25% 감소했다.

반대로 일부 인기 있는 상품들은 투자자들이 먼저 알아보고 줄을 선다. 심지어 가입 과정에서 승인 거절이 떨어지는 경우에 대비해 정답도 받아온다. 혹여 가입이 거절되면 "저긴 해주는데 왜 여긴 안해줘"라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

최근 보험상품에 가입한 일이 있다. 30분넘게 꼼짝없이 설명을 들어야했다. 중간중간 제대로 들었는지, 이해가 됐는지 확인도 이어졌다. 사흘 뒤 상품에 가입한 게 본인인지, 어떻게 설명을 들었는지 설문을 통해 알려달라는 문자도 받았다. 미처 답하지 못하자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또다시 15분 넘게 붙잡혀 있어야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30일 이내 해지할 수 있다는 안내도 받았다.

금융사 직원들을 만나서 물어보면 상품 팔기 싫다고 말한다. 들이는 품에 비해 돌아오는 이익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판매에 나설 수밖에 없는건 그놈의 '핵심성과관리지표(KPI)' 때문이다.

판매성과가 잘 나오면 매출이 커지니 회사에서 인정받는건 당연하다. 그렇다보니 어떻게든 성과를 내기 위해 투자 손실을 보전해준다거나, 자격이 안되는데 상품 가입을 유도하는 등 불완전판매가 발생한다.

금융업은 정부에서 자격을 확인받아야 하는 라이선스 산업이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이를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

그래서 제안해본다. KPI에 '수탁거부권'을 넣어보는건 어떨까. 수탁거부권은 금융사 직원이 상품 상담을 하거나 가입 과정에서 부적절하다 판단될 경우 투자나 가입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가입 거부 결정을 수치화해 직원들의 평가에 반영하면 불완전 판매 사례도 줄지 않을까. 나아가 투자 손실 보상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절감할 수 있지 않을까.

박시형 증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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