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환율전쟁下] '킹달러 시대' 저물고 경기침체 온다
[역환율전쟁下] '킹달러 시대' 저물고 경기침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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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가치 20% 추락, 8개월 연속 무역적자
역환율전쟁 후유증, 1%대 성장률 우려까지
상저하고의 2023년···하반기를 기약하다
만원권과 동전들 (사진=픽사베이)
만원권과 동전들 (사진=픽사베이)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킹달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주요국 통화 가치는 반등했고, 원·달러 환율은 한달새 100원 넘게 폭락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긴축 속도조절을 시사했고, 폭등했던 물가도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다. 길고 길었던 역환율전쟁의 끝이 보이고 있다.

그 대가는 비쌌다.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환율에, 무역수지는 8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내년 경제성장률도 1%대에 그칠 전망이다. 원화 가치는 회복되고 있지만, 황폐해진 국내 경제를 복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과연 우리나라 경제에 다시 봄은 올 것인가. 역환율전쟁 속 황무지가 된 우리나라의 내년을 가늠해본다.

◆치열했던 역환율전쟁···원화 가치, 20%나 추락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연설에서 "이르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발언했다. 그간 시장 내 가능성만 제기된 '속도조절론'을 인정한 셈이다.

그 결과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104선으로 떨어졌으며, 시장 내 연준 최종금리 전망 역시 5%로 하향 조정됐다. 1440원을 돌파했던 원·달러 환율은 네달 만에 1200원대로 떨어지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8월 이후 3개월째 5.6~5.7%대에서 정체됐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11월 들어 5%로 크게 둔화됐다. 통상 금리인상 효과가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반영된다. 이를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물가 안정을 위한 역환율전쟁에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고도 볼 수 있다.

되짚어보면 올해 원화는 일본 엔화를 제외하면 가장 가치가 절하된 통화로 꼽힌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10월까지 10개월간 통화가치 변동폭을 살펴보면, 달러인덱스가 95.55에서 111.42로 16.61% 상승했다. 반면 원·달러 환율은 1188.8원에서 1424.3원으로 19.81%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유로화는 9.77%(유로당 1.137달러→0.997달러) 절하됐으며, 파운드화 가치도 13.36%(파운드당 1.352달러→1.135달러) 떨어졌다. 중국 위안화도 달러당 6.354위안에서 7.177위안으로 12.74% 절하됐다. 기준금리를 동결해 고의로 엔화 약세를 유도한 일본(-27.3%)을 제외하면, 원화는 가장 높은 수준의 하락폭을 보인 셈이다.

◆최대 피해자 韓···1%대 성장률 '대두'

문제는 역환율전쟁의 후유증이다. 통상 환율 상승은 국내 생산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며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 무역수지 흑자폭을 확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를 노리고 고의로 통화가치를 절하시킨 사례가 일본이다.

문제는 올해 초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팬데믹 이후 각국 재정정책으로 확대된 수요측 압력과 공급망 차질에 기인한 공급측 압력이 만나 각국의 물가는 폭등하고 있었다. 여기에 우크라 전쟁이 에너지·식량 등 원자재가 상승압력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상품수입의 80%가 달러로 결제되는 상황에서, 달러 대비 하락폭이 큰 원화 가치는 수입물가를 급격히 끌어올린다. 

실제 한은에 따르면 수출금액지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 109.65(2015=100)에서 지난 10월 125.02로 15.37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수입금액지수는 같은 기간 120.52에서 165.1로 44.58포인트나 증가하며, 수출금액 상승폭의 세배에 육박했다. 

이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10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84.74로 전년 동월 대비 7.4% 감소하며, 19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순상품교역지수는 한 단위의 상품을 수출해 받은 돈으로 해외 상품을 몇 단위로 수입할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해당 지표가 하락했다는 것은 국내 교역조건이 그만큼 악화됐음을 뜻한다.

그 결과 산업통상자원부는 11월 무역수지가 70억1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며, 8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고 밝혔다. 올해 11월 기준 누적된 무역적자도 426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간 국내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수출이 부진한 흐름을 보이자 경제 전망도 악화됐다. 지난달 한은은 내년 경제 성장률을 1.7%로 기존 대비 0.4%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는 코로나19가 확산돼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2020년(-0.7%)을 제외하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길었던 역환율전쟁의 끝이 보이고 있지만, 이젠 후유증을 걱정할 때다.

◆역환율전쟁의 후유증···어두운 내년 상반기

치열한 역환율전쟁의 결과는 참혹하다.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은 1%대로 둔화될 것이며, 수출경기도 부진한 흐름을 보일 전망이다. 

특히 민간소비는 내년 경제성장률 악화의 주범이 될 예정이다. 올해 초 사회적거리두기 해제 이후 급증한 민간소비는, 부진한 수출흐름에도 역성장을 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기준금리는 내년 초 3.5%까지 상승할 것으로 관측되며, 해당 금리 수준은 최소 내년 하반기까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3분기 가계부채 잔액이 1870조6000억원이며, 변동금리 비중은 78.5%다. 평균 대출금리가 현재보다 1%포인트 상승 시 단순 계산으로 연간 이자부담이 15조원 가량 증가한다.

또한 10월 주택가격이 전월 대비 0.6% 하락하며, 2009년 1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통상 주택가격 변동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상승기 보다 하락기에 더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 위축은 더욱 부각될 예정이다. 높은 불확실성 역시 기업들의 투자 또한 위축시킬 재료다.

실제 소비자들의 경제 인식을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는 11월 86.5로 기준치(100)를 크게 하회했다. 경영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 등을 반영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75로 기준치를 크게 하회하며, 2020년 12월(75) 이후 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수출 전망 역시 밝지 못하다. 내년 미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경기둔화가 가시화되며, 해당 국가들의 자본재 수입이 감소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가격을 비롯한 수출가격 하락 흐름이 이어지고 있어, 무역수지 적자가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원화 절하 폭이 다른 주요국 대비 컸던 이유는 유가 등 에너지 리스크에 취약하고, 대중(對中)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라며 "또한 반도체 등 IT 부문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데, 나스닥 등 올해 IT 경기가 매우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당분간 국내 경기의 뚜렷한 반등 모멘텀이 없다. 오히려 11월 각종 파업 여파로 생산 부진 현상이 심화될 공산이 크다"며 "금리 급등과 자금경색에 따른 내수 경기 악화 등까지 고려하면 최소 내년 1분기는 지나야 경기회복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저하고(上低下高)의 2023년···하반기를 기약하다

반면 긍정적 시그널도 존재한다. 8월 이후 반도체를 중심으로 제조업 재고순환지표가 개선되기 시작했으며, 국내외 반도체 업체들의 감산으로 제조업 부문의 재고 부담은 점차 해소될 수 있다. 특히 최근 중국의 제로코로나 완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대중(對中)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연준의 긴축이 막바지에 접어든 현재, 수출경기 악화 등으로 원화 가치는 저평가 영역에 있다. 이를 감안하면 연준 긴축이 마무리되는 내년 1분기 이후 수출경기와 무역수지가 개선되며 원화 역시 안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 공격적 외국인 순매수와 12월 FOMC 회의를 앞두고 가시화되고 있는 미 연준의 완화적 기조는 국내 신용경색 완화에 일조할 재료다. 

이와 함께 수요에 의한 글로벌 물가 상방 압력이 약해지는 가운데, 환율이 안정되며 수입물가 상승세도 둔화될 전망이다. 이는 국내 물가를 둔화시킬 촉매로 작용할 것이며, 기저효과와 함께 내년 하반기 가시화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정훈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이 가파르게 악화되고 있지만, 투자 및 재고 감소를 통해 오히려 수출 단가가 빠르게 저점을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며 "다행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제조업 부문의 재고부담은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 이번주 중국이 방역완화 스탠스를 보이기 시작한 것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당분간 수출 경기 악화가 불가피하지만, 중국이 제로코로나를 완화한다면 수출은 내년 1~2분기 저점 기록 후 반등이 가능하다"며 "교역조건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만큼, 계절적 요인이 감소하는 내년 봄 이후에는 무역적자도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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