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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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며 문득 올 초 주가지수가 얼마였던지 궁금해졌다. 히딩크 식으로 표현하자면 주식시장은 늘 배고픈 곳이다. 아무리 주가가 올라도 투자자들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른다. 지금도 주식시장에선 손실을 봤다고 죽을상을 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올 한해 주가는 참으로 숨 가쁘리 만큼 많이 올랐다. 연초에는 1400선에서 꽤나 공방을 벌인 코스피 지수가 언제 1500선을 넘을지가 궁금한 수준이었다. 뒤져보니 개장 첫날 코스피 지수는 1435.26. 코스닥 지수는 608.72로 장을 마감했었다. 지금 2000선을 간신히 넘자마자 주저앉았다지만 지난 주말 코스피 지수가 1934.32, 코스닥 지수가 747.65였으니 지수 상으로는 엄청난 급등장세를 이어간 올 한해다.

물론 외국자본들이나 기관들처럼 전문가 집단이 큰 재미를 본 데 비하자면 개인투자자들은 수익을 내봤자 별게 아니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식투자를 마치 단숨에 일확천금하는 로또 당첨처럼 여긴 이들도 아직은 시장에 넘쳐나지 않나 싶다.

필자가 사는 서울 변두리의 증권사 지점에 들러보고 받은 인상은 은행예금 금리의 2~3배 정도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 듯이 맹렬한 욕구를 공공연히 드러내며 덤비는 배고픈 투자자들이 꽤 많아 보인다. 보유주식 전부를 걸고 신용거래에 나서는 이들도 보인다.

그들 중에는 부동산시장에서 급거 주식시장으로 선회한 이들도 제법 돼 보인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선거결과에 따라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연초 주식시장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부동산시장 규제강화에 뒤늦게 급등하던 주식시장으로 옮겨 탄 이들은 언제고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을 수도 있는 매우 유동적인 투자자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투자 시점에 따라 기대수익을 못 얻어 주식시장에 매력을 잃었을 수도 있고 올랐다 하면 30~50% 오르는 것은 일도 아닌 부동산 시장의 투기적 수익의 중독성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배고픈 이들이 비단 주식시장에만 넘쳐날 리는 없다. 우리 사회 곳곳이 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너도나도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이 온 사회에 끓어 넘치는 지금 그 어떤 결과를 얻은들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까 싶다.

이런 열망은 종종 조급증으로 일을 그르치게도 한다. 조급한 투자판단으로 인한 개개인의 실패는 그들만의 실패로 그치지만 만약 그런 조급한 열망에 떠밀려 정책이 흔들린다면 그 결과는 국가사회 전체를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대선 이후가 걱정스러운 진정한 이유가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있다. 당선되자마자 지지 세력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성급한 정책전환을 하고 나설 위험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럴 걱정에 ‘설마’라고 안이한 판단을 하기에는 지금 한국사회 전반이 불안한 열광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옛사람들은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 대구까지 맞춰가며 경계하기를 주문한다.

지금 우리는 어제를 잊었듯 먼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양 조급하게 발을 구른다. 발등의 불이 우선 급하다고 하는 데 그 불이 발등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조급한 마음에 환각증상마저 일으키는 듯하다.

그런 조급증은 아이들을 기르는 데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양육은 없고 오직 교육만 있을 뿐이다. 아기 때부터 학습 길들이기에 나선다. 아이든 어른이든 쉴 때도 있고 놀 때도 있어야 마땅하건만, 그게 자연의 순리이며 진정한 교육이건만 그런 본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아이의 적성도 주요 관심사는 아니다. 오직 ‘특별한 내 아이’를 만들기 위해 쉼 없이 ‘교육’에 매진한다. 맹모(孟母)가 울고 갈 교육열이라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실상은 남들 앞에 값비싼 보석이나 모피 대신 자랑하고 싶은 부모 허영심의 또 다른 발로는 아닐까 싶어진다.
꿰맞춰 놓고 보면 그 모두가 주식시장에서 만나는 그 배고픈 욕망들과 일맥상통하는 게 아니겠는가. 우린 왜 이렇게 배고픈 국민들일까.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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