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그리고 금융
무역, 그리고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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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30일은 무역의 날이었다. 우리의 경제구조는 여전히 수출에 의존하고 있지만 국가적인 수출실적을 큰소리로 자축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수출실적 10억불, 100억불이 국가적 기념행사의 제목으로 구실하던 기억은 마치 신화시대의 일인 양 아득하다.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전국을 들들 뒤져가며 내다 팔 물건이 없나 눈에 불을 켜던 계획경제 초기를 지나며 수출실적이 솔솔 쌓여가던 시절, 무역의 날은 늘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는 날이었다. 국가경제정책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삶이 오직 수출기업 지원에 올인 하던 시절이었기에 그들만의 먹고 노는 잔치는 용납이 안됐다.
지금은 전량 수입해다 쓰는 각종 잡화류도 두루 수출품목에 포함돼 있었다. 처음 이쑤시개가 수출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그 생경하고 황당한 느낌이라니...
하기는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고 전국의 도지사, 시장까지 군인들이 차지하고 앉았던 시절 시골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도 모피 수출을 할 거라며 각 학교에 나눠준 토끼의 먹이를 주기 위해 겨울방학 중에 말린 시래기를 들고 등교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를 따라 수출용 가발을 만들기 위해 그 때까지도 머리 쪽 찌고 있던 시골 아낙네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 헤집고 다니며 머리털을 수집하던 이들도 적잖은 신화를 만들어냈었다.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에게 뜨거운 밥 한 그릇 먹이겠다며 머리털을 잘라 판 산골 모정을 신문, 잡지가 우려먹고 영화로까지 만들어 재미를 보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 상품수출의 과정을 거치며 경공업이, 중공업이 차례로 발전해 나갔고 70년대 후반 들어서며 플랜트 수출이라는 대중에겐 상당히 낯선 형태의 무역도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정부의 강력한 수출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실적만 부풀리는 식의 구상무역도 횡행했다.
물건은 없이 서류만 오가는 공(空)무역을 통한 불법자금 조성이나 외화불법 반출 등 무역경제의 성장 못지않게 각종 범죄의 진화도 일어났다. 그 가운데는 늘 금융이 있었다는 사실의 발견도 새롭다. 긍정적 역할이든 부정적 역할이든 현대사회에서 ‘금융 없는 경제’란 어차피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니 당연한 일임에도 종종 그 존재는 잊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금융이 일상 속에서 공기처럼 물처럼 그렇게 긴요한 몫을 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작설하고 이제는 세계 10위의 무역대국답게 우리 무역의 패턴도 참 다양해졌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할 양상이 대기업과 중소하청기업의 동반진출이고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oo자동차 가는 곳에 oo캐피탈도 간다는 식의 금융 동반진출도 나타난다.
올해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의 지원이 서비스수출, 플랜트수출에도 고르게 미치도록 해야 함을 강조했다. 정부 지원이 나가면 금융이 실무를 맡을 터이다. 그러나 이제 민영화한 금융이 그런 정부 지원에만 수동적으로 나설 일은 아닐 성싶다. 현재의 ‘상위권 학생’ 수준을 넘어서서 ‘최고’를 향해 나아가자면 그에 걸맞게 무역경제의 큰 틀, 작은 틀들을 갖춰 나가야 한다. 금융이 스스로 찾아 나설 일들이 많아 보인다.
근래 신도시 임대주택사업을 위한 컨소시엄은 향후 전 세계를 향한 보다 주도적인 수출전략 수행을 위한 유용한 결합의 형태를 보여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시행사와 시공사로 결합한 것은 기본이다. 땅을 제공하고 터를 닦을 ‘공사’들도 묶였다. 그에 더해 시중은행들이 결합했다. 금융이 공동책임을 맡음으로써 민영임대주택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한 시선이 사라지고 수지 지구 등을 보면 오히려 과열의 기미조차 보였다.
그간 적은 마진에 독식해도 배가 고팠던 수출의 시대는 가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혼자 뛰어서는 경쟁력에서 밀리게 된다. 다양한 컨소시엄 형태를 검토하고 고민해봐야 한다.
아직은 경제제재에 묶여 수출 수입 모두 곤란을 겪고 있는 북한도 수출컨소시엄의 여러 파트너 중 하나로 안고 갈 방법이 찾아지면 자연스레 우리의 경제시스템에 끌려오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개성공단에도 그간 공을 들여왔지만 아직은 드센 정치적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인 양 불안하다. 안전운전을 하려면 회전할 땐 원을 크게 그려야 하는데.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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