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과 중소기업의 '연분'
국책은행과 중소기업의 '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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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후보마다 내놓는 각종 정책들로 국가경영 자체가 출렁대는 느낌에 종종 어지럼증이 돋곤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권자들의 피부에 닿는 것은 무어라 해도 역시 경제문제인지라 어깨로 쌀자루 메어다꽂듯 툭툭 던져놓는 각종 경제공약들 역시 어지러이 널려있다. 특히 올해 대선은 여느 선거 때 보다 경제 이슈의 차별화로 승부하려는 후보 간 공약들이 종종 허랑하고 허튼 맹세처럼 철철 넘친다.
그 넘치는 공약 중 하나가 마침 금융기관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니 짚어보기로 하자. 현재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로 지목되고 있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국책은행 민영화를 통해 중소기업 지원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이제까지의 민영화 속도에 비해 훨씬 가속이 붙으리라는 예상은 충분히 하고들 있는 터라 그 자체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IMF자금을 쓰기 시작한 이후 서둘러 진행된 일반 시중은행 민영화만으로도 정신 산란했던 대중들로선 거기 더 속도가 붙으면 어느 지경인지 몸이 흠칫 움츠러들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하필 이 대목에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여 버린 우화다. 서둘러 많은 황금알을 얻겠다고 죽인 거위 뱃속에는 당연히 황금알 따위는 없었다는 아이들 용 동화가 어른들의 현실세계에서 자꾸 떠오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일 수 없다.
물론 민영화 자체야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전 세계를 덮쳐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또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 시대가 지난 한국사회의 경제여건으로 봐서도 미루고만 갈 수는 없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국책은행 민영화를 서두르겠다는 것은 어법상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게 차기 정권 중에 서두를 일인지도 또 달리 살펴봐야 할 일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민영화한 시중은행들과 국책은행들 가운데 누가 더 중소기업 지원을 해왔는지. 민영화하는 단계에서 목돈이 생기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어차피 일회성 자금 확보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 이후 중소기업들의 자금 수요는 어떻게 충족시킬 작정인가를 어느 누구도 묻지 않는다. 공약(公約)은 단지 공약(空約)일 뿐이라 여겨서일까.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대기업을 앞지를 만큼 뛰어나다면야 민영화한 은행에서도 충분한 대출이 이루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건 이미 중소기업이 충분히 안정궤도에 진입했을 때나 꿈꿔볼 수 있는 일인 게 현실 아닌가. 자본주의가 고도화할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또 한국 사회에 중소기업의 미래가치, 벤처기업의 기술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만한 인적, 조직적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도 관건이 된다.
더 정직하게 지적하자면 적정한 선에서의 리스크를 인정하고 감내할 경영적 이해력이 있는지도 문제가 된다. 벤처투자의 성공 확률은 당연히 낮다. 성공하면 물론 대박이겠지만 열에 하나의 성공에 베팅을 하는 일이다. 그런 투자에 과감히 나설 금융회사가 없는 한 국책은행의 존재는 여전히 요긴한 구석이 있다. 구태의연한, 그래서 민영은행들보다 곰팡내 나는 국책은행의 행태 문제는 별개로 하고 경제적 니즈를 넘어선, 사회·정치적 수요까지 충족시킬 금융기관의 존재가 아직은 필요하다는 얘기다. 안팎에서 넘쳐나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거셀수록 일종의 안전장치로서 그 존재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이명박 후보의 그 공약에 환호할 법하다. 나중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자금의 숨통을 틔워준다는 데 마다할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런 중소기업 지원책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영세업체 경영자들까지 입맛을 다실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일반 대중은 그런 영세업체들이 중소기업이라고 여긴다. 중소기협 가입 회원사들은 다 평소에 대기업인줄 여긴다. 그러니 중소기업 지원책이 서민들 눈높이에선 여전히 있다고는 하는 데 보이거나 잡히는 바가 없이 스치는 바람일 뿐이다. 그리고는 사기당한 느낌에 분노한다. 그런 분노가 지금 넘쳐나는 한국사회인데 어쩌나.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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