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가까운 장래에 디지털 화폐 발행계획 없다"
한국은행 "가까운 장래에 디지털 화폐 발행계획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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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에서 CBDC 발행 동기 크지 않아…주요국도 마찬가지"
자료=한국은행
자료=한국은행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한국은행이 가까운 장래에 미래화폐인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이하 CBDC)를 발행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금수요도 꾸준하고 소액지급 서비스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은이 CBDC 거래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지 확신하기 어려운 데다, 제도 변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도 고려하면서까지 굳이 발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CBDC는 중앙은행이 차후 동전과 지폐 등 실물화폐를 대체할 목적을 가지고 직접 디지털 방식으로 발행하는 화폐를 뜻한다. 세계적으로 실체가 없는 화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지난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가상통화)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디지털화폐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진 상황이다. 

29일 한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자료를 책자 형태로 제작했다. 이는 한은이 지난해 1월부터 가상화폐 확산 등 움직임에 발맞춰 '가상통화 및 CBDC 공동연구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연구한 결과다. 이번 자료에서는 CBDC의 기본개념과 구현방식, 중앙은행 책무에 미치는 영향 및 법적 쟁점 등 그간 연구를 한 데 모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결과적으로 한은은 가까운 시일 내에 CBDC 발행 계획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중앙은행 업무 뿐 아니라 금융시장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CBDC 발행과 관련된 긍정·부정적 효과를 함께 논의하고 법적 쟁점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다 면밀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먼저 한은은 CBDC가 현금, 은행예금 등과 함께 통용되는 경우를 가정했을 때 장·단점을 진단했다. 안정성 측면에서는 지급과 동시에 CBDC 운영기관인 중앙은행 등을 통해 최종 결제가 이뤄지므로 은행 간 청산·결제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용리스크가 감축되고 현금에 비해 거래 투명성이 높아질 수 있으며, 통화정책의 여력이 확충되는 등 장점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단점으로 경제주체들이 은행예금 중 일부를 CBDC로 교환해 보유할 경우 은행의 자금조달비용 상승과 자금조달의 안정성 저하로 자금중개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CBDC 발행과 수요 증가는 중앙은행의 자산·부채 규모 증가를 동반하므로 금융시장의 신용배분 기능이 축소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더불어 현금의 익명성, 이용관행 등을 고려할 때 현금 수요는 일정 정도 유지될 것으로 예상 되는 점, 다수의 업체가 소액지급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어 소수 민간업체의 지급서비스 독점에 따른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들며 아직 한은이 CBDC를 발행하기에는 '시기상조' 임을 분명히 했다. 

개인정보의 문제, 재산권 침해 등을 비롯해 한은법, 전자금융법은 물론 헌법적 근거까지 검토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도 CBDC 발행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우선 한은이 CBDC를 발행할 수 있는지 여부조차 모호하다. 한은은 한은법 제49조와 제53조에 따라 '어떠한 규격·모양 및 권종의 한은권·및 주화를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CBDC는 규격·모양·권종이란 개념이 없으므로 '어떠한 규격·모양·권 종’의 개념에 포함되기 어렵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한은이 CBDC를 발행해 직접 유통하게 될 경우 예금자의 개인정보, 신용정보, 금융거래 내역 등을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향후 논란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 대응해 개인자산에 해당되는 CBDC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재산권 침해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 한은은 경기침체가 심화된 상황에서 소비 등 내수촉진을 목적으로 민간의 CBDC 계정잔고를 일정비율 감소시키는 방식의 마이너스 금리 부과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더해 한은이 소액지급에서 발생하는 대량 거래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을 갖췄는지, 그리고 이에 따른 제도변화, 사회·경제적 비용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에서도 아직 CBDC를 발행할 움직임은 없다. 지난해 9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현금이용 관행이 있다는 점, 분산원장기술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ECB가 CBDC를 발행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한은은 CBDC 발행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인 국가들의 대응 동향을 예의 주시하는 가운데 관련 연구를 지속할 필요는 있다는 설명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후 가상통화 TF는 해체하지만 이제부터는 한은 각 국별로 구체적으로 연구에 들어갈 계획"이라면서 "CBDC 발행이 거시경제 및 금융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과 CBDC 발행에 따른 사회적 비용·편익 등에 관한 심도 있는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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