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금통위원 "통화정책 수립 시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 중요성↑"
고승범 금통위원 "통화정책 수립 시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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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디펜던트' 원칙 재확인…"내외 금리차 영향 면밀히 분석해야"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사진=한국은행)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사진=한국은행)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금융안정'의 의의를 여러 각도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국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 역전 등 리스크 요인들이 현재로서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지만 향후 우리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만큼 금융안정 이슈에 대한 점검을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 위원은 18일 '금융안정의 중요성'을 주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요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은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를 거뒀다"면서도 "위기 극복을 위한 금리인하, 양적완화 등 정책들이 경제 대공황을 막는 데는 성공적이었으나 신용이 확대되고 레버리지가 증가해 금융불균형(financial imbalances)이 누적되는 문제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그동안 세계가 겪었던 많은 금융위기들의 근저에는 신용확대 문제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와 아미르 수피 시카고대 교수는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심각한 불황에는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쌓이고 자산가격이 폭락하는 현상이 선행했으며 가계부채의 증가, 자산가격의 폭락, 심각한 경기후퇴 이 세 가지는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버드대의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와 케네스 로고프 교수 역시 '국가든 개인이든 은행이든 부채누적을 통한 과도한 외부 자본의 유입은 곧 금융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고 위원은 "두 교수는 지난 800년 동안 66개국에서 일어난 금융위기를 분석한 바, 정부와 금융전문가들은 매번 '이번엔 다르다'며 위기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결코 단 한 번도 달랐던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들 경제학자의 주장을 최근 우리경제 상황에 대입해 봤을 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고 위원은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였음에도 여전히 가계 소득 증가율보다 빠르고 가계부채 규모 자체도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5월 기자간담회 당시에도 마이너스 국내총생산(GDP)갭과 인플레이션갭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가 필요하며, 가계부채와 같은 금융불균형 누적 문제와 관련해 더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 위원은 "최근에 한미 금리는 정책금리와 함께 수익률 곡선이 장단기 금리가 전체 구간에서 역전되는 형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힘 줘 말했다. 고 위원에 따르면 1999년 6월에서 2001년 3월, 그리고 2005년 8월부터 2007년 9월 기간 중에 한미간 정책금리 역전이 발생했지만 장단기 시장금리가 모두 역전돼 수익률 곡선 자체가 역전된 상황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미 정책금리는 물론 시장금리까지 역전된 상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내년 중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황에서 한미 시장금리 역전이 장기화하거나 역전 폭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고 위원의 진단이다. 그렇게 되면 자본 유출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다만 그는 우리의 해외 신인도 등을 고려할 때 대규모 자본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향후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와 글로벌 무역분쟁이 신흥국 금융불안을 초래하거나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면밀한 모니터링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종합해 볼 때 고 위원의 발언들은 큰 틀에서 금리인상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계부채, 내외 금리차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을 통화정책에서 더 고려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대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날로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데이터 디펜던트(data-dependent)'한 판단이 더 중요해졌다는 입장이다. 

고 위원은 이날 구체적인 금리인상 시기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은 금통위원들 가운데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로 꼽히는 그가 데이터 디펜던트 원칙을 재확인 하면서 8월 금리인상 가능성은 다소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데이터 디펜던트는 우리말로 직역했을 때는 '지표 의존적', 친시장적 표현으로는 '지표 연동적'으로 해석된다.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통계와 자료들을 기반해 선택한다는 뜻이다.  

앞서 시장에서는 이달 금통위에서 이일형 금통위원이 0.25%p 금리인상 소수 의견을 개진하면서 8월 금리인상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데이터 디펜던트 원칙에 입각한 가운데 소폭 하향조정된 올해 국내 GDP 성장률 전망치 등 다소 미지근해진 경제지표들을 고려하면 한은으로서도 바로 금리인상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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