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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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근래 잇달아 경제위기론을 설파하고 있다. 평소 지극히 과묵해보이기만 하던 이 회장이 지난 4월초에는 한국경제 샌드위치론을 들먹이더니 며칠 전에는 당분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지금 정신 차리지 않으면 4~6년 내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도 했다 한다.

이 회장의 최근 발언은 형식상은 그룹 내부를 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앞서의 샌드위치론이 나올 때도 그렇고 이번 발언도 그렇고 시기적으로는 단순한 경제적 현상에 대한 우려만 담고 있는 것으로 보기 애매하다.

실상 이 회장의 발언은 정확한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외에서 오래전부터 거듭 제기돼 온 문제들이다. 다만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군인 삼성그룹의 총수인 그의 입을 통해 바로 그 시점에 나오기 때문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일 터이다. 따라서 그의 발언 내용은 적잖은 경제적 영향력과 더불어 정치적 영향력까지 갖게 된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그의 기업군 가운데서도 핵심 중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실적부진이 그의 우려를 자아냈으리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적자를 낸 정도는 아니지만 이익률이 감소한 것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이는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에도 비상이 걸릴 만한 현상이다. 삼성전자 하나가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졌기 때문이다.

카스트로가 집권하기 전의 쿠바는 사탕수수로 웃다 사탕수수로 울게 되면서 급격히 혁명적 분위기에 휩쓸렸다는 분석들이 있다. 당시 농업이 주산업이었던 쿠바의 농민들은 사탕수수가 높은 수익을 내자 다른 모든 농사를 작파하고 사탕수수에만 올인 했고 처음 몇 년간은 호황을 누렸다고 했다. 그러나 곧 전세계의 사탕수수 과잉생산과 그로인한 가격폭락으로 사탕수수 재배농민 뿐만 아니라 쿠바경제 자체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가 한·두개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구조도 그만큼 위험성이 크다. 그러니 삼성전자의 실적부진이 몰고 올 파장을 우려하는 것은 이건희 회장만이 아니라 한국인 누구라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삼성전자가 그런 위기에 직면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8메가 D램에서 16메가 D램으로 점핑할 때도 기술적으로는 그것이 한계일거라는 말들이 나왔다. 따라서 한국경제 전체가 다 끝장이라도 날 것처럼 수선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그런 시중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연거푸 전 세계 반도체의 기술적 진보를 선도해냈다. 그리고 나날이 그 영향력을 키워갔다.

물론 1개 기업이 언제까지나 그런 긍정적 변모가 가능하다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10년 전부터 지적돼 온 얘기다. 삼성전자가 그렇고 한국경제가 그렇다.

미래산업을 어떻게 예상하고 설계할 것인지를 두고 설왕설래는 많았지만 지난 10년간 그 누구도 똑 떨어지게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해주지는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선택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정답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최종적으로는 누군가의 ‘결단’이 필요하다.

과거 삼성그룹이 주변의 우려와 질시를 극복하고 이병철 회장의 결단으로 반도체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오늘날의 삼성그룹이 됐듯이. 지금은 세계적 명성과 영향력을 지닌 그 삼성전자로 인해 삼성그룹 총수는 비로소 국민적 기업을 경영하는 존경받는 재벌이 됐다.
 
그 이전까지의 삼성그룹은 솔직히 먹고 입는 초보적 소비재산업만 가진 단순 ‘장사꾼’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그러나 반도체산업의 성공으로 더 이상 삼성을 그렇게 폄하하는 사람들은 사라졌다. 덕분에 고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장사꾼’에서 진정한 ‘기업인’으로 거듭났다. 재산은 물려받을 수 있지만 그런 평판은 물려받지 못한다. 스스로 쌓아갈 뿐이다.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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