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물결' 저자 앨빈 토플러 별세…향년 87세
'제3의 물결' 저자 앨빈 토플러 별세…향년 8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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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온라인속보팀] ‘제3의 물결’ 등의 저서로 유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가 27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연합뉴스'가 29일 보도했다. 향년 87세.

보도에 따르면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토플러가 부인과 함께 설립한 컨설팅회사 ‘토플러 어소시에이츠’(Toffler Associates)의 발표를 인용해 토플러 박사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토플러는 10여 권의 저서로 사회의 변화 방향을 제시한 20세기를 대표하는 미래학자. 남다른 예지력과 통찰력을 지닌 그는 '미래의 충격',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의 저서를 통해 인류 사회가 제조업 기반의 경제에서 지식과 데이터 위주의 사회로 이동해 갈 것을 예견했다.

일반인들에겐 낯설을 수도 있는 그의 미래학 저서들은 발간될 때마다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와 동시대를 호흡한 사람이라면 그의 책을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미래학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했다.

특히 그의 사회 변화와 관련한 생각들은 전 세계 지도자와 기업인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중국의 전 총리인 자오쯔양(조자양), 소련의 전 대통령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은 그를 멘토로 삼았을 정도다.

그는 미국은 물론 한국·싱가포르·멕시코 등 여러 나라 경제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선 김대중 정부 때 ‘21세기 한국비전’ 보고서를 통해 경제정책 수립에 도움을 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와 2001년에 청와대에서 오찬을 하며 의견을 나눴으며, 박근혜 대통령도 대통령 이전인 2006년에 면담한 바 있다.

역사에 족적을 남긴 큰 인물들의 삶이 종종 그러하듯 미래학자로 명성을 얻기까지 그의 인생 또한 나름 파란만장했다. 전반부는 미래학과는 비교적 거리가 멀다. 1928년 뉴욕에서 태어난 토플러는 뉴욕대에서 영어를 전공하다가 나중에 부인이 된 하이디를 만났다. 이들은 대학을 중단하고 1950년 클리블랜드로 이주해 알루미늄 제조 공장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토플러는 용접공으로, 부인은 노조 직원으로 일했다.

토플러는 1998년 한 인터뷰에서 "공장에서의 경험은 공장 근로자들이 사무직 근로자보다 덜 지능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토플러는 이후 저널리스트·문필가로 활동하다 70년 현대사회를 꿰뚫어 본 저서 '미래충격'으로 미래학자로서 이름을 알렸고, 이어 80년 '제3의 물결'을 출간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 책에서 미래 사회가 고도 정보화 사회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은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됐지만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은 300년밖에 걸리지 않았고 제3의 물결인 정보화 혁명은 20~30년 내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보화시대·재택근무·전자정보화 같은, 이제는 익숙하지만 당시로는 어색했던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도 당시 토플러다.

91년에 펴낸 '권력이동'에선 권력의 세 가지 원천을 폭력·부(富)·지식으로 규정했다. 토플러는 21세기 전 세계적 권력투쟁의 관건은 지식의 장악이며,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봤다. 15년 뒤인 2006년에는 '부의 미래'를 통해 '혁명적 부'에 관한 통찰력으로 또 한번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한때 토플러는 신문사에 입사해 백악관을 출입했고, 경제매체 '포천'(Fortune)에서는 다수의 기업 및 경영 관련 칼럼을 쓰기도 했다.

토플러는 뉴욕대·마이애미대 등 5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코넬대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60년을 함께 한 부인 하이디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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