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경영+국책은행이 상시구조조정 실패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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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하반기 은행 영업점별 구조조정 KPI 시행"

[서울파이낸스 이은선기자] 대기업 오너 중심의 '자회사 떠안기' 경영과 국책은행 중심의 기업 정상화 관행이 선제적 기업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업구조조정의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은행 등을 통한 시장 중심의 선제적 구조조정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제학회와 한국금융연구원이 15일 '바람직한 기업구조조정 지원체계 모색'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양원근 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과 은행이 상시적으로 해야 할 기업 구조조정에 정부가 주기적으로 나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외환위기 이후에도 자본시장 발달을 통한 기업에 대한 상시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 시스템 구축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양 위원은 "대기업의 경우 적은 지분으로 여러 기업에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경쟁력 없는 계열 기업을 지원하고 생존시킨다"며 "오너의 경영권 집착이 기업이 부실화되기 이전에 시장에 나올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너 중심의 경영 관행이 자본시장에서 사전적인 기업구조조정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창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서울시립대 교수)도 "자본을 투입해 성공했던 경험을 가진 재벌기업이 주식을 자식처럼 여기고 자회사에 집착해 막상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는 유연성있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중은행이 시장에서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업 평가시스템이 미진한 데다 부실 조짐을 보이는 대기업에 대한 대처가 미진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책은행이 부실기업 여신과 정상화 작업을 떠맡는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날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는 "최근에서야 대우조선해양의 여신 등급이 정상에서 요주의로 분류된 것이 말이되느냐"며 "요주의는 1%의 충당금을 쌓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권 전 부총리는 "현재는 회수유의 여신으로 가야하는 상황"이라며 "감독당국은 은행이 충당금을 충분히 쌓도록 엄격히 지도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위원은 "사실상 은행 대출이 막히면 기업의 구조적 문제와는 상관없이 사업을 축소하거나 조정할 수밖에 없다"며 "시중은행의 구조조정 리딩 역할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은행이 회수에 나서더라도 국책은행의 자금 지원을 통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기업이 연명해온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맡고 있는 박창균 중앙대학교 교수는 "중소·중견기업의 경우에는 굳이 정부당국의 개입 없이도 기업구조조정이 선제적으로 잘 이뤄지는 게 일상적 프로세스로 자리잡았다"며 "산업은행이 존재하는 한 대기업 구조조정을 다룰 주체나 방식에 대한 경험이 쌓일 수 없다"고 역설했다.

뒤늦은 기업구조조정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주도권 자체를 국책은행에서 시장으로 시급히 옮겨야 한다는 제언이 쏟아졌다. 일차적으로는 시중은행이 냉철한 평가로 시장에서의 원활한 기업구조조정을 유도하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당장 산업은행 없이 구조조정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 두려움이 있겠지만, 기존 관행을 버리고 시장 역할에 맡길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언급했다.

양 위원은 "은행과 기업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며 "비 올 때 우산 뺏는 은행을 지적만 할 것이 아니라, 비가 오면 은행이 우산을 뺏을 수도 있겠다는 압박감을 갖고 경영의 긴장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주도의 기업구조조정 시스템 마련을 위해 시중은행 영업점 별로 기업구조조정을 책임질 수 있는 성과평가기준을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양현근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은행들의 대출 관대화가 문제로 지적되는 만큼 하반기 중 기업구조조정과 관련된 은행권의 성과평가기준(KPI)을 적용하겠다"며 "지점 별로 거래 기업 평가를 통해 부실기업을 찾아내고, 보증이 필요한 기업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신청하는 프로세스"라고 소개했다.

임 부원장보는 "영업점 별로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며 "후임자 평가를 통해 전임자의 구조조정 지연에 대해서도 책임을 부과하는 성과 연동 시스템을 구축해 상시적·자율적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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