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노예계약' 논란①] '억' 소리 나는 교육비…입사하려면 빚져라?
[대한항공 '노예계약' 논란①] '억' 소리 나는 교육비…입사하려면 빚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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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서울파이낸스DB)

퇴사 시 일시상환 요구…책정 내역 불투명

[서울파이낸스 송윤주기자] 대한항공이 신입 조종사들을 상대로 수억원대의 교육비를 청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이를 한꺼번에 갚기 어려운 조종사들에게 10년에 나눠 채무를 면제해주면서도 그 안에 사직하면 이를 한꺼번에 갚도록 요구해 대한항공이 근로계약을 위반한 '노예계약'으로 또다른 '갑질'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에서 약 7년간 조종사로 재직하다 퇴사한 조종사 6명은 "입사 시 과도한 비행 교육비를 책정하도록 한 대한항공과의 계약은 부당하다"며 사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단은 "힘 없는 훈련생 신분일 때 1억7500만원대의 거대 상환 금액을 체결하는 계약은 노예 계약과 같다"며 "그 후로도 대한항공은 초기기종훈련비, 기종전환훈련비 등을 책정하고 근로를 지속해야만 채무를 단계적으로 면제해 조종사들이 퇴사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대한항공은 기장으로 승급되기 전 부기장이 되기 위해서는 지상학술교육, 모의비행훈련장치교육, 비행교육 및 특별교육 교육 과정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군 출신이 아닌 일반 신입 조종사의 경우 미국 항공청에서 발급하는 자가용 조종사 및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기 위해 미국 교육원에서 약 9개월 간의 초중등과정을 거쳐 제주도에 위치한 항공대 소속 비행훈련원에서 약 2년 간의 훈련을 받는다.

◇교육비 내려 '빚' 지는 조종사들대한항공 "교육받을 수 있는 혜택 준 것"
소송을 진행 중인 법무법인 대광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입사 전 신입 조종사들에게 초중등과정 교육비로 약 9000여만원을, 또 고등교육훈련비로 1억7500여만원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초중등과정 교육비는 일시 지불해야 하며 지급 능력이 없다면 은행에서 직접 대출해 해외 비행학교에 지급해야 한다.

다만 고등교육훈련비의 경우 회사에 채무를 지고 10년 동안 분할 상환하는 방식으로 변제가 이뤄진다. 근속년수에 따라 △입사 후~3년 5% △4~6년 7% △7~10년 16%의 비율에 따라 차감 상환되는 방식이다. 사내에서 근무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채무가 이같은 비율만큼 없어지는 셈이다.

만약 조종사들이 10년 근속을 채우지 못하고 사직이나 이직을 할 경우 대한항공은 남은 교육비를 한꺼번에 갚도록 요구하고 있다.

▲ 대한항공이 고등과정 훈련비 상환을 위해 사내 조종사에게 제시한 차용증

실제로 조종사 A씨의 경우 2007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뒤 지난해 초까지 약 6년이상 근무하다 퇴사하자, 대한항공은 A씨에게 미상환 고등훈련비 약 9650만원을 일시 상환하도록 청구했다.

또 대한항공은 입사 당시 신입 조종사들의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알고, 대여금 채무와 이자 상환을 담보하기 위해 가족이나 친지 등 2인에게 연대 보증을 서도록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A씨는 미상환금액에 관해 급여채권가압류 결정을 받은 상황이다.

A씨는 10년 의무 계약 방식과 연차가 높아질수록 상환 비율이 높아지는 방식은 조종사들의 근속 기간을 늘려 회사에 계속 잡아두려는 사측의 복안"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광 측은 "대한항공은 대출기관이 아니면서도 신입 조종사에게 2인의 보증인을 내세우는 조건으로 교육비를 빌려주고 조종사들이 10년 동안 근속하지 않으면 교육비를 몰취하는 구조의 계약을 강요했다"며 "회사에서 오래 근속해야만 억대의 고등교육비를 실질적으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신입 조종사가 사실상 금전 지출이 없는 교육비로 해당 기간 동안 근로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교육비 상환을 위해 대한항공과 조종사 간 맺은 연대보증서

근로기준법 제 20조는 사용자가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고 규정해 위약 예정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소송단은 "비행교육훈련 계약상 교육비 대여 및 상환면제기간 규정은 근로기준법에 위배돼 무효이며, 대한항공이 교육훈련대여금으로 조종사들에게 청구한 금액은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관계자는 "해당 프로그램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입사한 조종사들에게 지원된 것으로 소송을 제기한 퇴사 조종사들은 입사 당시 관련 내용을 알고 계약했다"라며 "비행 경험이 전무한 일반 지원자들에게 교육을 받고 여기에 발생되는 고가의 교육비를 근속하면 변제해주는 일종의 혜택으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입사 조건으로 비행 경력 1000시간을 규정으로 두고 있어 비행 경험이 전혀 없는 지원자는 외부에서 비행 시간을 채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소송단은 2011년 이후 입사자들에게도 교육비 액수만 다소 차이가 있을 뿐 10년 상환 방식의 계약을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송단은 "입사자들이 이미 비행 시간을 채우고 오더라도 반드시 대한항공이 지정한 제주비행원에서 1억이 넘는 교육비를 물려 다시 비행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먹구구식' 교육비 계산법?…"교육 내역 공개하라"
소송단은 대한항공이 조종사에게 수억대의 교육비를 책정하면서도 구체적인 교육 내역은 밝히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광 측은 "소송을 제기한 조종사들이 사직서를 제출할 당시 대한항공에게 미상환 교육 훈련비 내역을 요구하자 관리운영비, 시설 운영비, 인건비 등으로만 표시돼 있을 뿐 구체적으로 상세내역의 비용 발생근거를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소송단이 포함된 조종사 기수 이전 입사자들의 경우 같은 훈련을 받았는데도 고등 교육 훈련비가 1억4000만원으로 소송단보다 3000만원이나 낮게 책정돼 있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대광 측은 "다른 대기업의 경우 신입직원에게 6개월~1년 여간의 직무에 필요한 연수기간 동안 별도의 연수비용, 연수교관비용을 청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상 급여까지 지급해 준다는 점을 보면 대한항공의 이같은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이 조종사에게 추산 근거가 모호한 교육비를 물리는 행위는 정식 조종사로 입사를 한 후에도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항공기를 몰기 전 배우는 초기기종 훈련 및 기종전환 훈련의 경우가 그렇다.

이 때 쓰이는 교육 장비 중 FFS(Full Motion Simulator, 움직임 동작이 있는 시뮬레이터)가 교육비의 상당한 액수를 차지한다. 대한항공은 FFS 장비사용료 단가를 시간당 500달러 수준으로 책정했으나 모 외국 항공사의 경우 이는 시간 당 350달러에 불과해 대한항공의 장비사용료가 40%이상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의 한 항공사도 FFS 단가가 390달러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대한항공 내에서 같은 장비로 동일한 교육을 받아도 조종사마다 개별적으로 다른 비용이 산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이 장비로 교육받은 조종사 두 명의 교육 훈련비 내역서를 보면 시간당 장비 사용비는 각각 500달러, 575달러에서로 다르게 책정됐다.

이는 소송단 이전 기수의 조종사들의 교육 내역과 비교해도 상식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소송단은 B737, A330 기종에 해당하는 장비 사용료가 시간당 500~575달러였지만 이전 기수 조종사들의 경우 이보다 높은 조종 기술을 요구하는 B777, A380 등 대형 항공기 교육을 받는 데 장비 사용료는 시간당 400달러로 훨씬 낮게 산정됐다.

이 같은 사실은 대한항공을 떠나 타 항공사에서 재직 중인 조종사 B씨가 대한항공으로부터 교육비 청구서를 받고 이를 다른 조종사의 청구서와 비교하던 중 발견됐다. B씨는 기종 전환 훈련비의 경우 따로 계약서를 체결한다거나 회사에서 고지를 받은 적도 없어 재직 당시에는 까마득하게 몰랐다고 토로했다.

B씨는 "대한항공에서 수년이 넘게 근무했는데도 기종 전환 훈련비에 대한 정확한 내용이나 금액을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었다"라며 "이는 입사 전 교육비처럼 다시 조종사 근속년수에 따라 면책해주는 방식을 쓰면서 사내에서 계속 근로하게끔 유도하는 대한항공의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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