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총재의 소신과 말
중앙은행 총재의 소신과 말
  • 이양우
  • 승인 2003.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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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치의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침묵은 금이다. 말은 유용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지닌 양날의 칼과 같음을 비유한 격언들이다. 말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앨런 그린스펀이다.

83년부터 무려 16년간 미국 FRB의장을 맡아 수많은 말장난(?)으로 미국경제를 쥐락펴락했다. 그래서 그는 흔히 경제대통령으로 불리운다. 말의 영향력면에서는 대통령을 오히려 능가한다.

그는 대단한 레토릭을 구사했다. 노회한 경제학자인 동시에 언어의 연금술사다. 금리라는 가장 대표적인 거시경제정책수단과 말의 묘한 뉴앙스 차이를 조합해 시장을 움직여 미국경제가 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테크닉을 구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린스펀에 준하는 인물이 있다. 중앙은행인 한은의 박승총재다. 그런데, 그의 행동은 웬지 그린스펀에 비하면 실망스럽다.
지난해 4월 취임당시로 한번 거슬러 올라가 보자. 취임후 닷새만인 4월5일에 터져나온 그의 일성은 시장은 금리인상에 대비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언어의 연금술사 그린스펀을 떠올리게 하는 묘미있는 말이었다.

박승 한은총재는 그린스펀 못지 않은 경험많은 학자다. 말의 테크닉 또한 뛰어난 듯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말을 말답게 하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인 말의 타이밍에 대해서는 실망을 남겼다.
당시 그는 취임직후 금린인상과 관련한 발언만 어림잡아 5~6회를 반복했다.
금리인상을 단행하기까지 일주일이 멀다 않고 금리인상가능성과 관련한 이런 저런 말을 했던 셈이다.

그의 빈번한 말은 한은 총재의 시장길들이기 테크닉에 허점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었다.
박승총재의 최근 행보는 실망을 넘어 걱정스럽기까지하다. 새정부 출범이후 행정부 일각에서 경기부양책이 거론됐지만 그는 아주 빈번하게 금리인하 불가론을 역설했었다.
경기가 바닥인데 금리를 내려봐야 별 효과도 없으면서 자칫 부동산 투기나 물가상승등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는 논거를 제시하면서. 그러던, 그가 최근들어 석연찮은 동기로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함으로써 사실상 금리인하 불가피론으로 선회한 것이다.

시간적으로 볼때 경제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닌데 태도를 바꾼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주목할 것은 그의 태도 변화가 행정부 곳곳에서 경기부양차원의 금리인하 목소리가 드세지는 싯점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린스펀의 말의 위력은 1차적으로는 적시에 던지는 절묘한 타이밍과 정교함에 있다.

그러나, 그린스펀의 말의 위력의 본질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소신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이번 한은총재의 금리인하에 대한 갑작스런 입장변화는 이런 그린스펀의 처신을 무색케한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최근까지 한은총재의 소신은 금리인하 불가론이 분명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린스펀도 행정부와의 보이지 않는 조율하에 말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견해가 일치할때는 문제가 아니지만 입장이 다를 경우엔 꿋꿋하게 자신의 입장을 견지한다.

이번 한은 총재의 금리인하에 대한 입장변화를 전후한 싯점에서의 행정부 관료들의 입장을 한번 되돌아 보자. 단적인 예로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과거 금리인하는 주로 경기 바닥에서 이뤄져 투기등 부작용을 낳았다며 그렇기 때문에 경기가 바닥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이정우 실장과 박승 총재가 보는 경기에 대한 시각차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은총재의 말바꾸기가 말의 타이밍보다 더 중요한 소신까지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총재의 말바꾸기가 중앙은행의 위상저하만으로 그친다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작게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며, 크게는 통화신용정책의 효용성을 덜어뜨리는 엄청난 실수일 수 있기에 그의 불분명한 말바꾸기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행정부 일각에서는 금리인하의 목적을 실질적 효과보다는 상징성에 둔다고 공공연히 얘기한다. 이런 상황하에서 한은총재가 보여준 무소신과 석연치 않은 입장변화, 과연 상징성이라는 무형의 효과조차 거둘 수 있을까.
아마 상징성이라는 작은 효과는 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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