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재건축 단지의 표심(票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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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성재용기자] 추진과 무산을 수년째 반복했던 강남 노후 아파트들이 6월 지방선거를 70여일 앞두고 재건축의 첫 단추인 안전진단을 대거 통과했다. 과연 우연일까.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현대, 한양, 미성1차 등 22개 단지 총 9185가구가 강남구청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같은 날 대치동 우성아파트(1140가구)도 안전진단을 통과했고 한 주 정도 앞선 5일 대치동 선경아파트(1033가구)와 미도아파트(2435가구)도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다.

이를 두고 지난해 서울시가 한강변 관리방안을 발표하면서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고, 기부채납율을 15% 이내로 줄이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2009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개정되면서 안전진단 등의 추진주체가 기존 조합 등 사업시행자에서 구청 등 관할 지자체로 바뀌면서 안전진단 실시 자체가 더욱 어려워졌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최소 1억원가량 소요되는 안전진단 비용을 부담하기 쉽지 않은데다 예산 부족으로 안전진단 실시 기간이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안전진단이 예정된 단지들이 비슷한 시기에 몰릴 경우 관할 지자체가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안전진단 결과 재건축 유지·보수 판정이 나올 경우 예산을 낭비하게 된다는 문제도 거론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업계에서는 이번 대규모 안전진단 통과가 6월 지방선거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선거를 앞두고 재건축 주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

한 재건축단지 조합장은 "강남3구 재건축단지 가구 수만 봐도 압구정 일대 최소 2만~3만표, 은마 1만표"라며 "서초 재건축 연합회에 가입한 40여개 단지는 서초구 전체 유권자의 약 60%에 육박하는 등 구청장은 물론, 후보자들이 (재건축단지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 재건축시장이 '정치 바람'을 타왔다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은 현상이다. 특히 지자체장이 바뀌는 지방선거가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오랫동안 재건축을 희망했던 주민들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다.

그동안 재건축단지 거주자들은 사업 추진과 무산을 반복하는 동안 끊임없는 주차난에 시달렸으며 매년 겨울 동파 등으로 불편을 겪어왔다. 재건축이 추진되면 기반시설이 재정비돼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지자체로서도 상주인구 증가에 따른 세수증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재건축 사업과 관련해 주민들의 끊임없는 집회와 항의가 지속돼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지지부진하던 재건축사업에 탄력이 붙고 있다는 점에서 만큼은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재건축단지 거주자들 사이에서도 '선거 시즌만 기다리면 될 것을 쓸데없이 힘을 뺐다'는 우스갯소리마저도 심심찮게 들린다.

현재 여의도 재건축단지들이 밀집한 영등포구는 재정적 여건으로 안전진단조차 진행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이들에게도 '2018년 지방선거를 기회로 삼으시라'는 말을 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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