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소신과 고집 사이
정부의 소신과 고집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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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이 100일 이상 지속적으로 오르는데도 19일 정부가 내놓는 정책이 그 전 대책과 달라진 것이라고는 오로지 또 다른 재벌 하나에게 석유공급시장을 열어주는 것뿐이다. 그러면서도 이게 ‘발상의 전환’이라고 미화한다.

물론 이 발상의 전환은 이명박 대통령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어떻든 지식경제부가 그 뜻을 받들어 부처 이름 걸고 내놨으니 대단한 충성이다.

유류세 인하는 절대로 안 되지만 아직 완제품을 내지도 않는 삼성토탈에게 알뜰주유소용 석유공급자 자격을 부여해 4개사 독점체제를 5개사 체제로 바꾼다는 것인데 시작이야 알뜰주유소로 넘겨받겠지만 끝까지 알뜰주유소로 갈까? 국민 대중은 여전히 조삼모사의 수작에 놀아나는 원숭이 취급을 당할 뿐이지 싶다.
 
그 뿐인가. 서울시와 맞장 뜨자고 덤비는 9호선 지하철 민간사업자로 인해 민영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와중에도 국토해양부는 KTX 민간사업자 선정 기준에 대한 계획을 발표한다. 물론 들끓는 여론을 의식해 9호선과는 다르게 운영하겠다는 게 19일 밤 국토부가 내놓은 계획의 골자이기는 하다.
 
경실련에 따르면 8대 특혜의혹을 받고 있는 9호선 지하철 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운영수입 보장. 공기업 민영화를 본인 임기 중의 역사적 사명(?)으로 여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그 과거 전력이라 할 수 있는 9호선 지하철 문제를 보면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왜 민영화를 해야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민영화시킨 기업에 사업 수익이 나지 않으면 정부가 다 보전해 주겠다는 게 운영수입 보장인데 그럴 거라면 정부가 적자 공기업을 끌어안고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니 9호선 지하철을 인수한 기업 계열사 사장이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아들이라는 게 의혹을 부르지 않을 수 없겠다.
 
이미 당시에도 의혹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보수층과 부동산 한탕의 미망에 사로잡혔던 장삼이사들이 힘을 모아 그 의혹의 중심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니 서울시장 시절 했던 것과 같은 일을 대통령이 돼서 똑같이 반복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같은 재벌 여러 번 밀어주기를 하든, 연고가 있는 기업 앞으로 공기업을 민영화시켜 넘겨주든 그 일관성 하나는 인정해줄만 하다. 그걸 그의 소신이라고 해야 하는지, 단지 고집이라고 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임기 말까지 계속되는 몽니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는 좀 아리송하지만.
 
그런데 그 뒷 책임은 누구 몫인가. 이미 임기 말이니 당사자가 책임질 가능성은 제로다.
 
그렇다면 후임자의 몫으로 끝날까. 그럴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후임자가 같은 동류라면 본인은 그저 슬쩍 몸을 빼며 이익은 여전히 재벌에게, 물가와 세금의 부담은 국민들에게 안길 공산이 매우 크다.
 
9호선 지하철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이명박 시장 후임인 오세훈 시장은 전임자가 저질러놓은 일 뒤치다꺼리에 투덜댔다는 소리는 들리지만 그렇다고 어떤 개선도 시킨 게 없이 물러났다. 그 뒤치다꺼리는 결국 박원순 시장에게까지 전가됐지만 이번엔 방법이 달라졌다.
 
서울시와 사전 협의도 없이 9호선 지하철 민간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요금을 일거에 5백 원씩 올리겠다는 배짱을 부릴 수 있는 토대는 물론 이명박 시장,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이 만들어줬다. 그러나 동류의 후임자는 잘못된 계약임을 알면서도 끙끙거리며 그 뒤치다꺼리만 했을 뿐 잘못을 시정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여주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박원순 시장은 일단 그가 가진 합법적 힘을 적절히 쓸 것이다. 요금인상을 철회하지 않으면 사장선임권을 행사하겠다는데도 막무가내로 인상을 강행하겠다니 사업자 지정 철회도 검토하겠다고 강하게 밀고 나간다. 모처럼 자본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정치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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