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인턴제Ⅰ] "지인들에게 펀드팔기 바빠요"
[증권사 인턴제Ⅰ] "지인들에게 펀드팔기 바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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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윤동기자] 청년실업 문제가 심화될수록 대학 졸업자들의 '스팩 쌓기'는 더욱 바빠진다.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다. 특히 '증권맨'은 남부럽지 않은 고연봉으로 대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증권사로 통하는 문은 좁기만 하다. 청년들은 증권사 인턴자리 하나 따내기 위해서 기를 쓰지만 결국 영업 전선에 내몰리게 되거나 허드렛일만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는 증권사 인턴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무리한 영업, 친고영업 및 불완전 판매 우려
평가기준 미흡…성향 따라 정규직 전환 결정

"영업 목표를 부여해 달성 여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됩니다. 목표를 달성하려고 부모, 친척, 지인들을 끌어들여 무리하게 상품을 팔다가 지인들과 등을 지는 경우까지 생긴 사례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증권사 인턴을 경험한 A씨는 당시를 이처럼 소회했다. 그는 인턴생활을 보낸 서울 도심의 한 증권사 지점을 '전쟁터'로 표현했다. 인턴사원을 각 영업지점에 배치해 실전 영업을 시키기 때문이다.

증권사측에서 "펀드 50개 팔아와라" 같은 '실적'을 요구하고 그에 따라서 인턴을 평가하기 때문에 인턴직원간 '생존'을 위한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는 "어느 정도 사회생활 경험이 있으면 모를까 당장 영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아무래도 부모나 친지에게 손을 벌릴 때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같은 '친고영업' 현상만이 아니다. 상품판매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인턴이 실제 '필드'에 나가서 영업을 뛰는 게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인턴이지만 외부에서는 무슨무슨 지점 직원 이런 식으로 인턴에게 영업을 시킨다"며 "필기나 면접만으로는 영업에 대한 소질을 파악할 수 없어서 이런 시험을 치른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증권사 인턴들이 대부분 주식, 파생, 펀드 관련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데다 금융투자협회에 전문 인력으로 등록돼 있으면 주식 등의 영업이 가능하다.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문제의 소지가 많다. 정직원 전환 때문에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데다 영업 경험마저 적은 인턴들이 일선에서 뛰다보니 무리하게 고객을 모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히 불완전 판매 등 고객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시중은행 등 타금융권에서도 이같은 인턴 영업의 사례는 존재한다. 그러나 증권사 상품의 경우 타금융권 상품과는 달리 예금자보호를 받지 못한다. 투자손실이 발생할 경우 자칫 법적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A씨도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렸지만 "실제로 영업 중 인턴의 실수 때문에 인턴 본인은 물론이고 회사나 고객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영업 중 중대한 실수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워 인턴직원과 증권사간 갈등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분쟁 발생시 인턴이라 해도 직원처럼 보호를 한다지만 실수로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정직원도 어느 정도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며 "인턴의 경우 어떻게 될지 정확한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불리한' 전쟁터 속에서 열심히 실적을 쌓아도 평가가 좋지 못하면 정직원으로 전환되지 못한다. 정확한 평가 기준 없이 부서 직원 임의대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증권사의 인턴 평가 방식에도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증권사에서 인턴생활을 했던 B씨는 해당 지점 직원들의 주관적인 평가가 당락을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B씨는 "'멘토' 등 인턴에게 주로 일을 시키는 직원이 있다"며 "이런 멘토의 평가가 정직원 전환의 당락을 좌우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 채권, 자산관리 등 각 멘토마다 주력 분야가 다르고 영업 방식과 성향 역시 다양하다. 이런 멘토의 성향과 본인의 성향이 맞으면 좋은 점수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과제도 멘토가 내는 경우가 많고 그에 대한 평가도 멘토 혼자서 내린다"며 "한마디로 멘토가 봤을 때 자기와 성향이 맞고 자기에게 잘 보였으면 뽑고 아니면 안 뽑고. 일관된 평가 기준이 없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또한 성실한 멘토를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잔심부름만 하다가 인턴을 마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B씨는 귀띔했다.

그는 "가르쳐주는 것도 없이 복사나 잔심부름만 시키는 멘토가 많다. 중요하지만 귀찮은 일, 이를테면 해외 사례 수립 같은 실적에 크게 상관없는 일을 시키는 직원도 있다"며 "평가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어 일은 일대로 다 하고도 떨어지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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