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년-금융(上)] '관치금융' 부활···수장 교체·시장 개입 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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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세대교체 요구···신한·우리·농협·BNK 수장 교체
금리인하 압박에 앞다퉈 '상생금융'···금리 기현상 '혼란'
"당국 주도 상생금융 한계···금융사 자율적 지원 중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 1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주요 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교체됐고 이자장사, 고액 성과급 논란 여파로 규제는 한층 강화됐다. 여기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등 글로벌 은행발(發) 부실 리스크가 더해지며 국내 금융회사들에 대한 감독당국의 보다 강력한 규제가 예고되고 있다. 물론 대출규제 완화, 혁신금융 육성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묵은 금융규제를 혁신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말 많고 탈 많았던' 금융권의 지난 1년을 되돌아본다./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금융권에서는 지난 1년을 두고 '신(新)관치 시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0일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 언급한 것이 무색하게 금융권에선 인사 개입, 규제 강화 등 정부발 압박이 한층 거세지고 있어서다.

관치 그림자가 본격 드리워진 것은 지난해 말 금융그룹 CEO들이 잇따라 교체되면서부터다. 첫 스타트는 지난해 11월 초 임기를 5개월 남기고 조기 사임한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이었다. 김 전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으로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경제고문을 맡는 등 전 정부와 가까운 인물로 분류된다.

김 전 회장은 자녀가 근무하는 증권사에 특혜성 지원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조기 사임했다. 해당 증권사가 BNK금융 계열사에서 발행하는 채권의 인수단으로 선정된 후 채권을 대량 인수하는 등 특혜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여당 의원들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의혹을 처음 제기했고,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나서면서 김 전 회장은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김 전 회장 사임과 동시에 BNK금융 이사회가 외부 인사도 회장 후보에 오를 수 있도록 기존 규정을 수정했다는 점이다. 기존 '최고경영자 경영승계 규정'에 따르면 차기 회장은 그룹 계열사 대표 중에서만 선임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CEO 선임 규정 변경은 낙하산 인사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실제 여러 금융권 올드보이(OB)들이 대거 하마평에 오르면서 정부의 인사 개입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회장 자리는 내부 출신인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에게 돌아갔지만 일련의 CEO 선임 과정에 당국의 개입 의지가 엿보였다는 점에서 논란이 된 바 있다.

국내 상위 금융그룹들도 인사 외풍을 피해갈 수 없었다.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NH농협금융지주 등 손꼽히는 국내 주요 금융그룹의 수장들도 대거 교체됐다. 모두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연임 가능성이 컸던 CEO들이기에 업계의 충격은 컸다.

조용병 신한금융 전 회장은 6년의 임기(한 차례 연임)를 마치고 지난해 12월 8일 차기 회장을 뽑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에서 3연임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 회장이 재임기간 동안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만큼 순탄하게 3연임에 성공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세대교체 흐름을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신한금융은 재일교포, PEF 등 외국계 주주의 영향력이 커 다른 금융그룹 대비 정부 외풍에서 자유로운 기업이지만 세대교체를 원하는 당국의 바람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란 시각이다. 현재 조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진옥동 회장(전 신한은행장)이 신한금융을 이끌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 전 회장도 지난 1월 연임 도전을 포기하고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손 전 회장의 경우 용퇴를 결정하기까지 금융당국 수장들이 노골적으로 퇴진을 요구해 논란을 불렀다. 손 전 회장은 DLF·라임펀드 등 각종 사모펀드 손실 사태와 관련한 징계조치에 번번이 불복소송을 해, 당국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던 상황이었다. 당시 당국 수장들은 공개된 자리에서 손 회장을 향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여러 차례 경고성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손 회장의 뒤를 이어서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을 이끌고 있다. 임 회장은 금융권 대표 모피아(기획재정부 관료 출신)로, 우리금융이 외부인사인 관료 출신 CEO를 선임한 것은 15년 만이다.

NH농협금융도 지난해 말 수장 교체를 통해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차기 회장으로 낙점했다. 탄탄한 실적을 냈던 직전 손병환 회장의 연임설이 불거지던 가운데 윤 대통령 대선캠프 초기 좌장을 맡았던 이 전 실장이 새롭게 농협금융을 이끌게 된 것. 정부발 세대교체 흐름과 더불어 친(親)정부 인사를 기용하고자 하는 내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업계는 해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재인 정부' 당시 선임된 금융지주 수장들은 예외없이 교체하는 게 이번 정부의 방침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새 이렇게까지 금융회사 CEO 인사가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며 "과거 금융회사는 외풍이 워낙 많았던 터라 최근 CEO 장기집권을 거치면서 지배구조가 안정된 측면이 있는데 현 정부 들어 갑자기 장기집권의 폐해만 부각하는 것 같아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리 개입도 윤 정부의 관치금융을 설명하는 대표 사례다. 당국은 지난해 말부터 개별 금융회사들의 대출금리를 심층 모니터링하는 등 추가 금리인상 자제 신호를 여러차례 보냈다. 이에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빅스텝(기준금리 한번에 0.5%p 인상)을 단행한 후 11월, 1월 기준금리를 연속적으로 올렸지만 은행 대출금리는 오히려 더 떨어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주요 은행들이 대출금리 일괄 인하를 골자로 하는 상생금융을 지난 3월부터 시행하면서 금리 이상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같은 금리 개입은 연말연초 금융회사들이 이자장사를 기반으로 역대급 실적을 거둬들인 후 직원들에게 고액의 성과급을 지급한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이 지난 2월 은행을 '공공재'로 규정하며 고통분담을 요구한 후 금융당국은 은행 영업관행을 수술하겠다며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은행권의 금리산정체계를 개선해 과도한 이자장사를 방지하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와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게 주 목적이다.

지난 2월 22일 첫 TF 회의가 열린 후 당국은 매주 실무작업반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일까지 7차례 실무작업반 회의가 진행됐으며 당국은 TF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종합, 다음달 말 은행권 제도개선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은행권에서는 이번 제도개선과 상생금융 압박으로 금리 자율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당국의 금리 개입으로 기준금리와 은행 대출금리가 흐름을 달리 하는 등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트리고 있단 지적도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포퓰리즘적 금리인하 압박을 지양하고, 대신 취약계층 지원을 지속하면서 시장금리 형성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도록 금융회사들이 지속가능한 상생금융 방안을 주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당국의 한시적이고 반복적인 금리 개입은 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으로도 해석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상생금융을 정부 주도로 한시적으로 운영할 게 아니라 은행들에게 인센티브 등 혜택도 동시에 주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하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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