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에너지 핵심 ESS 화재 봇물, 원인 불명확
신재생에너지 핵심 ESS 화재 봇물, 원인 불명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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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까지 국내 사업장 정밀조사 실시···안전표준화 도입 2019년말 이후 예상
지난 9월 14일 오전 4시 40분께 화재가 발생한 한국전력 제주본부 ESS 사고 현장. 해당 시설 제조사는 레보(Revo)로 확인됐다. (사진=김규환 의원실)
지난 9월 14일 오전 4시 40분께 화재가 발생한 한국전력 제주본부 ESS 사고 현장. 해당 시설 제조사는 레보(Revo)로 확인됐다. (사진=김규환 의원실)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지난 정부에서 에너지 신산업 핵심으로 시작된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ESS) 보급이 현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과 맞물려 늘어나고 있다. ESS는 전기를 미리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장치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기저부하처럼 안정적으로 사용하려면 ESS는 필수지만 11월 한 달에만 또 4건의 화재가 발생하는 등 원인조차 명확하지 않은 사고는 여름에 이어 겨울에도 이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7월에도 점검했지만, 이달부터 내년 1월까지 국내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다시 실태 조사를 실시한다. 업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설계 관련 구조적 문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추정한다. 양적 성장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ESS 안전 제도 확립은 국제표준이 완성되는 내년 말 이후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ESS 사고, 11월에만 4건···"일반 화재에 비해 진화 어려워"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ESS 사업장에서 발생한 화재·폭발 사고는 총 15건이다. 지난달에는 4건이나 발생했다. 11월 12일 경북 영주시와 충남 천안시의 태양광 발전설비 내에서 불이 났고, 22일 오후에도 경남 거창군과 경북 문경시 태양광 발전시설 일부에서 화재가 발생해 약 2시간 만에 진화됐다.

공통점은 시설 내 ESS에서 화재가 시작됐다는 목격자 증언과 사고로 리튬이온배터리가 소실되는 등 저장시설 중심으로 재산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국과수 감식 결과를 기다리거나 이미 결과가 나왔더라도 명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일반 화재 현장과는 달리 화재 진화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거창소방서 관계자는 "대부분 불길이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배터리 폭발 위험을 상쇄할 만큼의 물을 준비해 작업을 진행한다"면서 "물로 어려울 때는 마른모래를 사용하는데 기본적으로 충분한 양이 준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영주소방서 관계자도 "감전 위험이 있으므로 원록적으로는 물을 사용하면 안 되고 분말을 써야 하는데 현장 상황이 녹록치 않다"면서 "화재 원인이라도 정확하게 알면 재발 방지를 위해 홍보라도 하겠지만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 선행 조사 결과는 왜 공개 안하나?

산업부는 지난달 28일 국내 ESS 사업장 1300개를 대상으로 내년 1월까지 정밀 안전진단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정밀 안전진단은 LG화학·삼성SDI·한국전력공사 주도와 민관합동으로 구성되는 특별점검 태스크포스(TF) 등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앞서 산업부는 ESS 화재 문제가 불거지자 올해 7월부터 일부 사업장을 중심으로 점검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에는 산업부 에너지신산업과와 에너지안전과, 제조사 등이 주축이 돼 1008여곳에서 장비 설치 상태를 살펴보는 방식 등으로 검사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는 국가기술표준원을 컨트롤타워로, 지난번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산업부 입장이다. 현장 점검 외에도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별도 실험도 실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선 사고들은 기온이 높아지는 5~8월 사이에 몰려있어 열에 취약한 배터리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최근 사고 4건의 경우 기온이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저장시설에 불이 난 셈이다. 산업부가 이번에 종합대책을 발표한 것도 최근 발생한 화재의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7월 배터리 제작사인 삼성SDI는 고객사에 배터리 충전잔량 운영조건을 70%로 낮출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LG화학도 지난달 23일자로 종전 95%에서 75%로 줄여서 운영할 것을 고객사에 요청했다. ESS의 중요 부품인 리튬배터리 제작은 삼성 SDI와 LG화학을 비롯해 몇몇 중견·중소기업에서 만든다. 삼성이 580여곳, LG가 400여곳에 배터리를 공급했다. 현재 삼성SDI 제품을 쓰는 사업장은 100% 출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LG화학의 경우 순차적으로 원상복귀 중이다. 양사 모두 운영 조건 변경 따라 발생하는 손해는 배상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앞서 실시된 조사와 현재 진행 중인 조사는 연계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내부검토 사항이기 때문에 결과를 별도 발표하지 않았고, 조사를 총괄하는 기술표준원에서 현재 실시 중인 점검 결과와 함께 발표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당초 국감에서 나왔던 말도 이달 내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언급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사고 발생 지점을 CCTV로 촬영한다고 해도 그곳이 화재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면서 "ESS를 구성하고 있는 리튬배터리와 전력제어장치(PCS),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사이의 상호작용, 간섭 등 시스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요소가 원인이라고 집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부충격이 발생하면 PCS와 BMS 등을 통과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PCS 문제 등을 포함해 몇 가지 추정 중인 원인은 있다"면서 "시스템 안전 작업을 진행하면서 정확한 화재 원인을 기술적으로 파악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김규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산업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산 변전소와 영암 풍력의 사고 원인은 BMS 오류로 추정됐다. 경산 변전소의 경우 한국전력은 메인 부스와 제어케이블 간 절연 이격거리 근접문제 등 제품 설계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대학 교수는 "기온이 낮아졌는데도 화재가 발생한다는 것은 안전장치 작동 여부, 배터리 자체 등 설계에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할 것"이라면서 "충전잔량을 최소 95%는 유지해야 하는데 70~75%로 낮춰서 운영하는 것은 효율성이나 경제성 측면에서 봤을 때는 적절하지 않은 조치"라고 말했다.  

◇ ESS 안전 표준 마련 시급

국내 ESS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안전 관련 제도는 현재로써는 전무한 상태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ESS의 경우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의 관리대상에는 포함돼 있지만 가정, 사무실 등에 사용되는 정격용량 100kVAh 이하 소형 ESS에 한정된다. 최근 화재가 발생한 ESS 사업장은 1Mwh급의 대용량으로 전안법상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소형 ESS가 라면상자 1개 크기라면 산업용 ESS는 컨테이너박스 1개 크기에 달한다. 

산업부에 따르면 ESS 관련 국내표준이 도입되는 것은 오는 2020년 초다. ESS 수요가 많은 한국이 국제표준 제정을 선도하면서 국제표준이 확정되면 이를 기반으로 국내에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배터리, PCS 등 각 요소에 대한 표준도 현재까지는 없을뿐더러 ESS 전체 시스템에 대한 국제표준도 최근에서야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다. 

국표원 전기전자표준과 연구원은 "성능시험 표준제도는 지난해 말 완성됐지만 안전관련 제도는 현재 만들고 있는 단계"라면서 "내년 말을 목표로 국제표준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국내 표준은 의결 등 거처야할 과정들이 있으니 좀 더 멀리 목표를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ESS 수요가 많은 국내 특성상 국제표준이 진행되는 상황을 살펴보면서 초안이 나올 경우 단식표준화 과정을 거쳐 국내에 보급하는 등 전략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개발 성과가 있다면 국제표준에도 도입하는 등 투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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