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차방정식' 풀어야 하는 ESS 화재 2차 조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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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문제' 결론 시 리콜 실시될까 
"진행성 불량 검증 기준도 향후 쟁점될 것"
지난해 8월 30일 예산에서 발생한 ESS 화재. (사진=예산소방서)
지난해 8월 30일 예산에서 발생한 ESS 화재. (사진=예산소방서)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2017년부터 이어진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관련 2차 정부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원인 규명을 둘러싼 조사위원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차 조사위가 부실 조사로 시장의 논란을 키운만큼 이번에는 명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는 것은 물론 침체된 산업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처방도 필요한 상황에 놓였다.

2차 조사위가 일부 화재에 대해 '배터리 결함'으로 잠정 결론냈다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셀(cell)·모듈(module) 등 배터리 단위 문제와 리콜(제품 회수)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됐다. 국회의원 보좌진이 포함됐다는 점, 일부 사업장에 대해서는 데이터를 확보했다는 점 등으로 인해 1차 조사위와는 다른 결론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셀'이냐 '모듈'이냐···배터리 단위별 화재 연관성은?

1차 조사위는 △배터리 보호시스템 미흡 △운용관리 부실 △설치 부주의 △통합관리체계 부족 등 4가지를 직·간접 화재원인으로 꼽았다. 특정 시기에 동일한 생산공장에서 만들어진 LG화학 일부 배터리 셀에서 극판접힘과 절단불량, 활물질 코팅 불량 등 제조 결함이 확인됐지만 조사위는 화재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모사한 셀을 제작해 충·방전 반복시험을 180회 수행했지만 발화로 이어질 수 있는 셀 내부의 단락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조사위는 이같은 상태에서 만충상태가 지속 유지되는 경우 화재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1차 조사위 실증시험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 제기됐다. 모사한 단셀을 이용한 180회 충·방전 시험은 화재와의 연관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실제 가동 시에는 직·병렬로 연결된 수백개의 셀이 충·방전되기 때문에 단셀과는 전혀 다른 조건에 놓이게 될뿐만 아니라 180회도 부족하다는 것. 

현재 2차 조사위는 배터리 제조 혹은 현장 설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인지를 비롯해 다각도로 화재 원인을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ESS 구성품 가운데 배터리의 경우 셀, 모듈 등 단위별 문제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통상 배터리로 지칭하지만 구성 단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므로 사고 원인 분석과 대책도 상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배터리 셀 불량과 배터리 모듈 결함이라는 용어는 엄밀히 말해 차이가 있다. 

핵심 설비인 배터리 랙(Rack)은 직렬로 연결된 모듈과 랙 보호장치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22개의 리튬 셀이 모여 한 개의 모듈을 형성하며 1 랙은 11개의 모듈(242셀), 1 뱅크는 19개의 랙(4598개)으로 이뤄진다. 셀은 리튬이온전지의 기본 단위로 양극과 음극, 분리막, 전해액 등으로 구성되며 파우치와 원통형, 각형으로 나뉜다. 모듈은 열, 외부충격 등으로부터 셀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수의 셀을 특정 형태의 프레임으로 묶은 집합체다. 

사진=김해소방서
사진=김해소방서

최근 발생한 5건의 화재 가운데 마지막 사고였던 김해 ESS 화재의 경우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와 조사단 간 발화 원인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할 소방서의 화재현장조사서에는 '합동감식 결과 배터리의 구조적 결함으로 장기간 발열이 발생해 발화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재돼있다. 

조사서에 따르면 정상적인 배터리 셀은 4개의 단위전지(베어셀)가 병렬로 연결됐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안전감정서 결과 랙 6의 5번 배터리 모듈에서 비정상적인 셀(3개로 구성)이 발견됐다. 병렬 연결(P) 시 용량이 커지고, 직렬로 연결(S)하면 전압이 상승한다. 3P가 4P에 비해 내부저항이 커져 가동 시 전기적 발열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열적 스트레스가 장기간 누적돼 발화됐다는 설명이다. 

제조사 측은 조사위가 이달 중순께 해명을 받아들였고, 이 사안에 대해서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생산라인에서 3P 상태로 출고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면서 "화재로 인해 베어셀 1개가 외부로 튕겨나갔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3개로 발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련 로그 기록을 조사위에 제출했고, 화재 재연 시험과 모듈·셀 해체 분석 결과도 문제 없었다"면서 "다만 외부로 튕겨나간 잔해를 찾지 못한 이유는 화재 이후 어지럽혀진 현장 환경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조사위는 관계자는 "기술적인 검토는 실시했지만 아직 검토 중에 있다"면서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한 내용이 많아 표현이나 기술적으로 적정하다고 판단되는 부분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로그 기록에서 정상 조건 시 용량 값으로 확인되는지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로그 원본과 제조사가 제시한 자료를 비교·분석하고, 최외곽 단위전지의 폭발흔 유무 등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모듈 단위의 인증은 없고 단셀 인증만 있는 상태에서 화재 발생 시 책임 소재는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셀이 가혹한 환경에서 사용됐을 때 유발되는 '진행성 불량'을 검증할 수 있는 기준도 없기 때문에 배터리 제조사가 사고 책임을 지더라도 배터리 문제로 봐야할지는 여부는 또 다른 쟁점"이라면서 "1차 조사위부터 이같은 문제를 들여다 봐야했다"고 설명했다. 

◇ 배터리 결함 결론 시 '리콜' 실시될까 

지난해 6월 1차 조사위 발표 이후부터 지속 거론됐던 쟁점은 문제가 된 배터리의 리콜 여부다. 지난해 국감에서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의원들의 질의에 "배터리는 소비재가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는 리콜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여러 차례 실험과 토론을 했는데도 발화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추가적인 화재를 막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검토 중이며 일부 제품을 교체하거나 회수하는 방안도 논의됐다"고 덧붙였다. 

1차 조사위는 특정 배터리에 대해 리콜을 결정하지 않았다. 화재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콜을 실시할 경우 산업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2차 조사위 발표가 임박하면서 일각에서는 배터리 리콜 문제가 다시 거론되는 상황이다. 실제 리콜이 결정됐을 경우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로 예상된다. 

첫 번째는 '자발적 리콜'이다. 이 경우 사업자가 스스로 결함 제품의 회수를 실시한다. 두 번째는 '강제적 리콜'로, 정부의 강제 명령에 의해 시행된다. 회사가 문제를 인정하는 자발적 리콜과는 달리 강제 회수는 사업자가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지했더라도 결함 여부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므로 정부가 강제로 집행한다는 점이 다르다. 마지막은 문제가 됐던 배터리를 사후관리서비스(A/S) 차원에서 교체 완료했으니 사실상 리콜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경우다. 실제 LG화학의 경우 다수의 사업장에서 배터리 교체를 실시했다. 

자료=경북 칠곡소방서
자료=칠곡소방서

22번째 ESS 화재였던 지난해 5월 4일 경북 칠곡군 화재현장조사서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해 11월 30일과 12월 12일, 올해 4월 8일 총 3차례에 걸쳐 배터리 교체와 철거 작업을 진행했다. JH3 셀 1만5708개로 운영하던 중 모듈전압편차로 난징(南京)공장 제품을 교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난징공장에서 제작된 JH3 모델은 지난해부터 문제의 배터리로 지목된 바 있다. 

이에 LG화학 측은 당시 모듈전압편차는 가동 중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화재 원인과는 관련없으며, 다른 사업장의 경우 환경적인 요인으로 배터리를 교체했다고 밝힌 바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현재 제기되는 리콜 언급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 나왔던 내용의 연장선상일 것"이라면서 "당사도 2차 조사위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예산 화재의 경우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과 PCS업체·시공·운영사 간 기술적인 시시비비가 없었다고 들었다"면서 "1차 조사위 활동 당시 제조사들은 시공 등의 문제를 거론하곤 했는데 이 사고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모듈 단위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모듈에서 불량이 유발될 시 셀과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인지가 쟁점"이라면서 "아울러 정부의 배터리 안전인증이 제조사에 면죄부로 이용되는 상황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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