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삼성SDI의 자신감···'특수 소화시스템'으로 ESS 화재 확산 방지
[르포] 삼성SDI의 자신감···'특수 소화시스템'으로 ESS 화재 확산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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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ESS 배터리 양산하는 삼성SDI 울산공장 가보니 
'차단제·소화약재'로 배터리 셀 피해 최소화 '전소 방지'
허은기 삼성SDI 전무(오른쪽)가 ESS용 특수 소화시스템의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삼성SDI)
허은기 삼성SDI 전무(오른쪽)가 ESS용 특수 소화시스템의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특수 소화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은 ESS 모듈 커버는 화재로 구멍이 났지만 적용된 커버는 손상이 없었다. (사진=삼성SDI)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특정 셀에 충격을 가해보겠습니다. 인접한 셀 변화가 어떻게 다른지 보세요"

지난 23일 방문한 삼성SDI 울산공장. 80cm 두께의 콘크리트 문이 닫히자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이날 사업장 내 안전성 평가동에서는 허은기 삼성SDI 시스템개발팀장(전무)의 지시에 따라 특수 소화시스템이 적용된 에너지저장장치(ESS) 모듈 화재 테스트가 시연됐다. 화재 확산 차단용 소화시스템이 적용된 모듈과 적용되지 않은 모듈의 셀을 강철 못으로 찔러 발화 상태로 만든 후 셀 발화와 다른 셀로의 확산 여부를 비교해보는 실험이다. 

우선 소화시스템이 적용된 모듈의 특정 셀에 충격을 가하자 '콰광'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퍼져나갔다. 전압은 90V로 거의 완충 상태에서 테스트가 시연됐다. 연기의 양이 점점 많아지면서 충격을 직접 받은 셀의 온도는 상승했다. 실험실 외부에 마련된 모니터 화면을 살펴보니 타겟(target)셀의 온도는 300℃ 이상으로 치솟았다. 반면 충격을 받지 않은 인접 셀의 온도는 40℃까지 천천히 상승했다. 10~15분이 지나자 연기의 양은 급격히 줄었고, 타겟셀 온도는 3.1℃로 하락하는 등 모듈 전체 온도도 내려갔다. 셀과 셀 사이 복합재질의 열차단재와 특수 소화약재가 작작동하면서 화재 확산을 막은 것이다. 

허은기 전무(왼쪽)가 신개념 열 확산 차단재와 외부 고전압, 고전류 차단 장치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삼성SDI)
허은기 전무(왼쪽)가 신개념 열 확산 차단재와 외부 고전압, 고전류 차단 장치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중간 사각형 모양의 물체가 열 확산 차단재. (사진=삼성SDI)

이어 소화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은 모듈에도 동일한 테스트가 실시됐다. 셀에 충격을 가하자 앞선 실험의 2배 정도의 엄청난 굉음과 맹렬한 화염이 모듈을 휘감기 시작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타겟셀 온도는 300도 이상으로 치솟았고, 타겟셀 온도가 올라가자 재차 '쾅'하는 소리가 났다. 양옆에 위치한 셀의 온도도 서서히 올라가더니 5분이 채 되지 않아 120℃까지 상승했다. 불꽃과 연기는 인근 셀로 확산돼 모듈이 전소되고 나서야 사그라들었다. 

현재까지 발생한 ESS 화재 가운데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고 배터리실의 모든 배터리는 전소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배터리 발화 지점을 추정할 수 있어도 발화 원인은 직접적으로 논단 불가하다는 것이 감식기관의 입장이었다. 국과수가 보고서에서 '논단 불가'로 기재한 이유는 발화점인 배터리 모듈의 소훼 변형 때문이다. 발화점이 배터리인 화재는 거의 전소됐기 때문이다. 셀 훼손을 낮추는 소화시스템이 적용될 경우 전소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향후 화재 발생 시 원인 규명이 좀 더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소화용 약품의 효과를 입증하는 테스트도 실시됐다. 소화시스템이 적용된 ESS 모듈 커버에 불을 붙이자 수십 초내 불이 꺼졌고, 모듈 커버에는 화재 손상이 없었다. 반면 해당 장치가 적용되지 않은 모듈 커버는 불에 녹아 구멍이 났다. ESS 모듈 상부에 설치된 소화 약품은 특정온도가 되면 자동 분사해 불을 끈다. 

테스트를 시연한 허 전무는 "고전압·고전류 등 외부 충격을 막기 위한 고전압 보호장치와 랙·모듈 퓨즈 등 3단계 안전장치를 국내 전 사업장에 설치 완료했다"면서 "이같은 예방책과 함께 화재 발생 시 확산 방지를 위한 대책이 특수 소화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미국 소방법에서 ESS 안전 기준이 강화되고 있는데 이같은 추세와 맞물려 해당 장치들을 개발했다"면서 "내년부터 법제화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삼성SDI에 따르면 소화약재 거치용 틀과 차단제가 모듈에 적용될 경우 단가가 기존 대비 3~4%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업체가 해외에서 원료를 구매한 후 제작해 삼성에 납품한다. 이외에도 배터리 취급 과정에서 충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하고, ESS 설치 및 시공상태 감리 강화와 시공업체에 대한 정기교육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회사 측은 일부 ESS 화재의 경우 시공 당시 배터리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등 작업자 부주의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삼성SDI 울산사업장 내 전기차와 ESS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전지2동. (사진=삼성SDI)
삼성SDI 울산사업장 내 전기차와 ESS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전지2동. (사진=삼성SDI)

화재 테스트 시연에 앞서 방문한 전지2동에서는 무인로봇이 배터리를 싣고 나르는 등 제작 공정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반도체 클린룸과 흡사한 셀 라인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 세밀함이 느껴졌다. 배터리 공정은 크게 극판공정과 조립공정, 화성공정 등 3단계로 나뉘며 1개 라인에는 100명 정도의 직원들이 투입된다.

우선 극판공정의 시작은 '믹싱(Mixing)' 단계로 활물질, 도전제가 잘 섞이도록 하는 작업이다. 양극재와 음극재 믹싱이 각각 따로 진행되는데 양극재는 슬러리·NMP·활물질·바인더를, 음극재는 슬러리·NMP·바인더·알루미나를 믹싱한다. 믹싱 후에는 코팅과 압축 작업, 절연테이프 부착을 거쳐 일정한 크기에 맞춰 자르는 슬리팅(Slitting) 작업이 실시된다. 

조립공정에는 양극과 음극이 직접 만나면 위험하기 때문에 사이에 분리막을 넣는 작업을 진행한다. 양극재-분리막-음극재를 겹쳐 권취해 '젤리롤'을 만든다. 절연시트와 테이프를 감은 후 사각형 통(캔)에 집어넣고, 음극과 양극의 다리 역할을 하는 전해액을 투입한다. 캔 내부의 잔여 가스를 모두 제거한 뒤 개별 셀마다 20% 정도 사전 충전을 실시한다. 

화성공정에서는 '에이징(Aging)'으로 불리는 셀 활성화 작업을 실시한다. 삼성SDI 관계자는 "에이징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 하에서 일정 시간 동안 보관(방치)하는 것을 뜻한다"면서 "공법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24시간 정도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배터리는 향후 반도체 매출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2025년에서 2030년 사이 대략적으로 가늠이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은 "화재 원인이 무엇이든 배터리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로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다"면서 "ESS 산업을 살리기 위한 차원에서 특수 소화시스템을 만든 만큼 국내 ESS 생태계가 하루빨리 복원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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