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의 ‘삼성전자 회장’직은 꽃놀이패?
이건희의 ‘삼성전자 회장’직은 꽃놀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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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로 군림,막강 권한 휘둘러도 법적책임은 안져

문제발생하면 누군가 '독박' 이회장은 자동면제부에 종신경영

 이인용부사장,"대표이사 아니기때문에 주총필요없다"고 밝혀

[서울파이낸스 정일환 기자]이건희 회장이 복귀했다는 ‘삼성전자 회장’의 실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에는 회장이라는 공식 직책이 없는데다, 대표이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 회장이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느냐가 도마에 오른 것.  게다가 전권을 행사해도 책임은 질 필요가 없는 자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그룹에도 법적으로 ‘회장’이라는 직책은 없다. 인사권 등의 의사결정권은 대표이사의 몫이다. 이건희 회장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2008년 4월 22일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기 직전까지 삼성전자 대표이사와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법적 요건을 갖춰 혹시 있을지 모를 논란이나 문제의 소지를 차단한 것이다.

삼성이 이 회장 퇴진 당시 “이건희 회장은 경영에서 퇴진합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대표이사 회장과 등기이사, 문화재단 이사장 등 삼성과 관련한 일체의 직에서 사임 절차를 밟을 것입니다”라며 긴 사족을 단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런데 이 회장이 복귀했다는 이번 발표는 직책과 절차에 관한 설명이 퇴임 때와는 많이 다르다. 삼성은 24일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에 복귀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대표이사나 등기이사가 아니라 ‘그냥 회장’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아닌 삼성그룹 회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어차피 ‘삼성 그룹’이라는 조직 자체가 실체가 없는, 하나의 호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룹 회장’ 대신 ‘삼성전자 회장’을 택했다.

이에 관해서는 삼성도 명확하게 밝혔다. 이인용 삼성전자 부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 회장이냐, 삼성그룹 회장이냐”라는 물음에 “삼성전자 회장이다”라고 확인했다.

물러난 자리는 법적 책임과 권한을 가진 대표이사와 등기이사였는데, 복귀했다는 자리는 사실상 실체가 없는 회장인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절차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밝혔듯 삼성은 이 회장이 퇴진할 당시 “일체의 직에서 사임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스스로 명기했다. 그런데 복귀는 아무런 절차가 없다.

이인용 전무는 “주총 등 별도 절차는 없어도 되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표이사가 아니니까 없어도 된다”고 답했다.

삼성 스스로도 이 회장이 복귀했다는 삼성전자 회장의 실체에 관해 잘 알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삼성은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삼성측은 이 회장의 향후 역할에 관해 “그룹 전체적으로 투자, 사업조정 등 의사결정의 스피드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그룹 대표 회사이고 하니 삼성을 대표하시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삼성전자 사옥 꼭대기 층인 42층에 회장실을 만들고 회장비서실도 다시 만든다고도 했다.

퇴진 전과 동일하게 삼성전자는 물론 그룹 전체를 대표하며 경영 전반에 관여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이건희 회장이 앞으로 수행하게 될 임무가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법적으로 이 회장은 지분 3.38%를 가진 소액주주에 불과하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대표이사나 등기이사도 아니다. 물론 삼성측의 ‘배려’로 그가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가능하다.

문제는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투자 등 경영 실패가 발생 했을 때다. 이 회장은 대표이사나 등기 이사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특히 법적 책임이 발생했을 때 그는 자동으로 면죄부를 받게 된다. 누군가 대신 ‘독박’을 쓰고 이건희 회장은 지배력을 유지하는 방식이면 된다. 

결국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복귀는 그에게 법적 면죄부를 쥐어주며 사실상의 ‘종신 경영체제’의 길을 여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 ‘은둔의 제왕’, ‘침묵의 경영자’라던 그가 요즘 부쩍 대외 활동이 늘고 말이 많아진 것은 어쩌면 ‘책임질 일’이 없어져서 홀가분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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