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은행들, '규모의 경제'가 대안
'벼랑 끝' 은행들, '규모의 경제'가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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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환경 악화에 제도적 압박 '이중고'
"출혈경쟁 최소화 차원의 M&A 불가피"

[서울파이낸스 공인호 기자] 은행권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가뜩이나 영업환경이 녹록치 않은 가운데 정부의 압박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업권간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한 가운데 은행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 구축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은행이 '동네북'?
다음달부터 국내 은행들은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금융위기에 대비한 리스크관리 체계를 평상시에도 구축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내달부터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유동성 리스크 관리기준'을 은행권에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관리기준에 따르면 은행들은 은행들은 유동성 리스크 관리 목표를 세워 신상품 개발 등의 주요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하며, 스트레스테스트를 반영해 양질의 유동성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

또한, 자금 조달원이 특정 통화에 몰리지 않도록 만기분산 목표치를 세워야 하며, 위기상황에 대비한 비상조달 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이는 국내 은행의 여수신 및 자금조달 시스템에 전반적 손질을 요구한 것으로,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돌출된 각종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번 조치에 대해 은행들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도 향후 영업전략 수립에 적잖은 제약이 뒤따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키움증권 서영수 연구위원은 "금감원의 이번 결정은 은행들의 무분별한 대출 경쟁을 제한하는 결정적인 규제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은 대출성장보다 순이자마진 확대 및 비용절감 등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잔략으로 경영전략을 선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로서는 향후 실적부진의 장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에 엎친데 덮친격이 아닐 수 없다. 올 하반기만 하더라도 은행의 실적악화는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정부가 올 연말까지 부실채권 비율을 1% 수준으로 낮출 것을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말 현재 은행권의 부실채권 비율이 1.5%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조원 규모의 자산상각이 불가피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중소기업지원 MOU의 종료시점인 올 연말께 중소기업 부실문제가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은행권에 부실채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도 기업들의 연쇄도산에 따른 금융불안을 최소화 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 상반기 은행권이 예상외의 실적호조를 보였지만 건전성은 더욱 악화됐다"며 "은행들의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크게 하락한 것이 단적인 사례이며 하반기 추가 부실이 발생할 경우 고스란히 실적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은행의 고정이하여신에 대한 충당금 적립비율은 지난해 1월 200%를 상회했으나 6월말 현재 103%까지 추락했다.

■경쟁구도의 다각화
8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증권사들의 CMA 공세도 은행의 경영호전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현재까지는 시장의 우려만큼 급속한 자금이탈이 나타나지은 않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부분 출혈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증권사를 계열사로  갖고 있는 삼성, 현대그룹 등 대기업 고객들의 대규모 이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증권사 관계자는 "은행들이 CMA 대항마 차원의 고금리 정기예금 및 복합금융상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고객이탈을 최소화하고 있다"며 "그러나 연령대가 낮을수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고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CMA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증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각종 제제에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까지 허용되면서 은행들은 업권내 경쟁 뿐 아니라 증권업계와의 치열한 경쟁구도에 놓이게 됐다. 증권사에 이어 보험사에게도 지급결제 업무가 허용될 경우 은행들은 사실상 무한경쟁 체제로의 진입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은행들 역시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보폭을 넓히기도 힘든 상황이다. 또, 파생상품 및 펀드수수료 등 비이자 부문에서의 수익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예대 업무에 비해 위험부담이 크다는 점이 고민이다.

강종만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적 금융위기가 모기지대출과 비이자수입 업무의 결합에 의해 촉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은행의 비이자수입업무에 대한 당국의 감시·감독 움직임이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내부경쟁은 최소화하면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설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매각을 앞두고 있는 외환은행을 비롯해 민영화 대상인 우리금융과 산업·기업은행 등이 은행간 합종연횡 시나리오의 등장하고 있는 것도 M&A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권 경쟁상대인 중국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발판으로 해외 금융사들의 지분매입에 나서고 있으며, 일본의 3대 은행인 미쓰비시UFJ, 미즈호파이낸셜그룹, SMFG 등도 해외금융사들의 지분확보를 통해 해외진출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는 점도 국내 은행권을 자극하는 요인이다.

금융위기의 발원지인 미국 금융시장 역시 메릴린치와 베어스턴스 등이 BOA 및 JP모건 등에 인수되면서 시장재편을 통한 대형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안남기 상항정보실 부장은 "세계 주요국 은행들은 금융위기가 확대된 가운데 자산매각, 조직축소 등 생존의 노력과 지분인수, 업무제휴, 합작법인 설립 등 성장의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국내 은행들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은행으로 성장하기에는 우리시장이 너무 작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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