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와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
EU와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
  • 홍승희
  • 승인 2003.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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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단일통화체제를 구축하면서 초기의 휘청거림에서 벗어나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듯하다. 유럽 경제가 2001년 이후 지속되던 침체를 벗어나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이 가져온 초기의 혼란이 단시일 내에 수습되면서 그 시너지 효과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지금 유럽은 미국의 일방적 독주에 제동을 걸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미국의 일방주의에 안티를 걸 가장 힘있는 세력은 통합 유럽이다. 물론 러시아가 아직은 미국과 입장을 달리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지만 이미 과거의 소련과 지금의 러시아는 그 힘이 현저히 달라져 있는 상태다. 중국이 기세를 올리며 추격해가고 있다지만 아직은 그 막강한 인구와 그에 따른 잠재력 외에 현실적으로 미국과 맞먹겠다고 나설 정도에 이르려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에 비해 유럽은 군사력 쪽에는 별 힘을 기울이지 않아 미국과 충돌할 일을 피하면서도 정치적 발언권을 강화시키고 있다. 유럽 각국이 서로간 신뢰를 구축하면서 경제적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실리를 취한 결과다. 동아시아가 아직 상호간 신뢰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유럽연합은 특히 경제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독주에 가장 효과적으로 제동을 걸고 있다. 동아시아의 힘이 점차 커져 간다지만 아직은 국가간 신뢰수준이 얕은 데다가 근래 들어서는 중국과 일본 등이 새로운 군비경쟁의 단계로 접어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만한 조짐들마저 나타나고 있다. 잠재적 위험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높아져 가는 것은 아닌가 싶을만큼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동아시아는 아직 분열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한채 여전히 서로를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동아시아가 통일된 행동을 보이기는 어렵다.

그에 비해 유럽은 비록 아직은 국가간 이해 조정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지만 경제적 이해를 일치시켜 가는데 동아시아 보다 훨씬 유리해진 상태다. 특히 최근 EU에는 구 동구권이 대거 참여하면서 범유럽 혹은 메가 유럽을 지향해 나가는 추세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럽의 광역통합 움직임은 머잖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이 이 추세대로 광역화될 경우 비록 인구수에서 아시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8억 이상의 단일시장이 형성되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체제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몰아올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가 지금 아무리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해도 현재의 각개전술로는 미국 중심의 체제에 변화를 줄 수는 없다. 그에 비하면 현재의 세계경제체제에 실질적 변화를 초래하며 새로운 중심세력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유럽 쪽이 월등히 높아질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블럭이 얘기되기 시작한 역사가 유럽에 비해 짧다고 해도 그 기간에 비해 각 국가간 이해를 일치시켜가기 위한 성과가 너무 미미하다. 동남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아세안은 실상 1세계 중심의 경제체제가 가하는 심각한 압박을 방어하기 위한 자위수단 이상이 못된다. 그만큼 중심체제와는 거리가 멀다. 동북아 국가들은 역사적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상태에서 정서적으로도 일치를 향한 첫걸음조차 떼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물론 경제는 철저히 현실주의자들의 영역이지만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데 각국간 정서적 장벽이 일정 정도 발목을 잡는 것 또한 현실이다. 현재 달러화를 앞세운 미국의 경제공세나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 행태에 대해서조차 동북아 3국은 효과적인 방어조차 못한 채 미국의 일방적 공세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형국이다.

동아시아 경제블럭이 처음 제기될 때에도 과거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악몽이 되살아나 심한 거부감을 보였을 만큼 역사적 상처로 인한 정서적 장벽은 종종 실리적 공조에 장애가 되곤 한다. 상호 신뢰구축을 가로막고 있는 이런 정서적 장벽을 무시한 채 지금과 같이 3국이 각개 약진해 나가면 세계경제체제의 주도권은 19세기 이래 지속돼 온대로 미국과 유럽 간의 나눠먹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제 다시금 중국의 중원무사들이,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아무리 고강한 기술을 구사해도 유럽과 미국의 총과 대포 앞에 허물어졌던 것을 동북아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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