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성인지 감수성' 대법원의 두가지 관점
[전문가 기고] '성인지 감수성' 대법원의 두가지 관점
  • 이동현 법무법인 더앤 파트너 변호사
  • jongkim@seoulfn.com
  • 승인 2024.03.0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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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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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2018년 성범죄 관련해 ‘성인지 감수성’ 개념을 도입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이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다.

이후 하급심 법원은 성범죄 사건에서 혐의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일지라도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올해 1월 대법원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남성 A씨가 지하철에서 여성 B양의 옆 자리에 앉아 B양에게 신체적 접촉을 해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추행)이 문제된 사건에서 ‘성범죄 사건에서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야 하나, 이는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기존 2018년 판례의 입장을 변경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성범죄는 피해자와 피고인이 단둘이 있다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피해자 내지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를 판단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수사기관의 조사나 법원의 재판은 사건이 발생한 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 진행되므로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성범죄 재판을 진행해 보면, 법원은 피해자가 모순되거나 CCTV 등으로 입증된 객관적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근거로 ‘피해자가 다소 모순된 진술을 하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진술할 수 있다’는 식으로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을 했다. 그래서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성범죄는 유죄추정의 원칙이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최근 대법원 판례는 기존의 판례를 변경한 것이 아닌 기존의 판례가 지나치게 피해자의 진술에만 치우쳐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이라 본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당연히 처벌돼야 한다. 특히, 성범죄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피해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만큼 더욱 엄중하게 처벌돼야 한다. 다만 억울한 피고인이 있으면 안 된다. 그 억울함을 누가 풀어줄 것인가? 단순히 감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법언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판사는 신이 아니다. 실수를 할 수 있는 우리와 같은 똑같은 인간이다. 판결에서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만들어진 원칙이 앞서 언급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다. 범죄자를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범죄자는 당연히 처벌돼야 하며, 죄질이 안 좋은 경우에는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 함은 당연하다. 다만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사회는 양 극단으로 가는 사회가 아닌 나름의 기준과 법칙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다. 그래야 피해자든 가해자든 억울한 사람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사회는 극단적인 사회가 됐다. 즉,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론에 따라 감정적인 대응을 해 극단적으로 법률을 개정 내지 제정한다. 결국 이러한 법률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은 국민이다. 법률가로서 이러한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원칙과 기준에 따라 일반인들도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결이 내려지길 바란다.

이동현 법무법인 더앤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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