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진격의 'K-방산' 발목 잡는 수은법
[데스크 칼럼] 진격의 'K-방산' 발목 잡는 수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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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폴란드·호주 등을 거쳐 중동에도 'K-방산' 돌풍이 불고 있다.

LIG넥스원과 사우디 국방부는 천궁-Ⅱ 10개 포대 등 총 32억달러(4조2500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지난해 11월 체결했다. 이는 지난 2020년 한해 우리나라 전체 무기 수출액(29.7억달러)을 크게 웃돈 규모다. 

서방 무기체계와의 호환성을 비롯해 가격 대비 우수한 성능, 여기에 선진 방산강국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빠른 납기 등 3박자가 어우러지면서 '세계 4대 방산강국'이란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미국·러시아·프랑스·중국 등에 이어 무기수출 순위 9위를 차지했다. 

한국전쟁 당시 총 한 자루도 제대로 만들 수 없었던 무기 후진국이 70여년 만에 방산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정부도 세계 무기수출 점유율을 현재 2.4%에서 오는 2027년까지 5%로 높여 세계 4대 방산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런 훈풍에도 방산업계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수출입은행(이하 수은) 자기자본금이 한도에 달해 수출금융을 지원해주데 지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현행 수은법상 대기업 집단 등 특정 대출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은 자기자본의 40%까지로 묶여있다. 이 때문에 법정 자본금 15조원 등을 포함해 18조4000억원 가량을 대출해 줄 수 있는데, 40%에 해당하는 7조3600억원 중 6조원을 작년 7월 폴란드 1차 계약에 이미 사용했다.

방산, 원자력 등과 같은 대형 수출사업은 수출국의 정부·금융기관 등이 정책금융·보증·보험을 지원하는 게 관례다. 계약 규모가 큰데다 물품 인도까지 긴 시간이 소요돼서다.

구매국 역시 성능 외에 기술 이전과 함께 금융지원 등을 감안해 무기 구매를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무기 성능이 엇비슷하거나 성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는 특성을 감안해 금융지원이 입찰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적잖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도 2010년대 초반부터 세계 방산시장을 노크해 왔지만, 기존 4대 방산강국(미국·프랑스·러시아·중국)의 수출금융지원 등에 밀려 수차례 고배를 마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잭팟'을 터뜨린 폴란드 방산수출에도 비상이 걸렸다. 1차 계약(총 17조원)보다 액수가 훨씬 큰 폴란드 2,3차 수출계약(최대 30조원)에 암초가 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최근 들어선 폴란드 새 정부가 무기계약 관련 '융자금'을 빌미로 이전 정부와 우리나라 방산기업들과 맺은 무기구입 계약 일부 재검토, 변경 혹은 철회 가능성을 내비췄다.

이에 국회는 수은법 개정을 통해 자기자본금 한도를 기존 15조원에서 최대 50조원까지 늘리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지만, 여야 정쟁에 가로막혀 국회 문턱을 아직 넘지 못하고 있다. 방산업계는 오는 4월 총선 일정을 감안하면 2월 임시국회가 수은법 개정의 마지막 처리 시한으로 보고 있다.

4월 총선 전까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경우 이미 체결된 폴란드 2,3차 납품 계약에 비상이 걸릴 뿐 아니라 호황기를 맞이한 K-방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최근 K-방산 수출금융 주요 이슈와 향후 과제' 보고서를 통해 "폴란드가 무기계약을 철회하면 동북유럽 국가 방산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유럽 방산수출 교두보를 확보하기도 어려워지고, 폴란드 무기계약과 관련된 국내 수백여개 기업을 포함한 K-방산기업 전체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5년 베이징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깜짝 발언'을 한지 30년이 다 돼 간다. 기업들은 1류를 향해 꾸준히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사이 우리 정치는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30년이 된 이 회장의 발언이 '구문(舊聞)'이 됐다는 것을 정치권이 이번 기회를 통해 보여줘야 한다. 힘을 보태지는 못할망정, 밥상을 뒤엎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창남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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