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업, 성장 위한 라이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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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구경은 재미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UFC 같은 격투 스포츠에 열광한다. 야구에서 종종 일어나는 벤치클리어링이 하나의 이벤트처럼 인식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TV 토론도 일종의 말싸움이다. e스포츠 역시 캐릭터와 캐릭터 간의 싸움이다. 타인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싸움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다. 

사람 대 사람, 캐릭터 대 캐릭터의 싸움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기업 대 기업이 돈으로 싸우는 일은 얼마나 재밌을까? 기업 간의 마케팅 경쟁은 사람 간의 싸움과는 다른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기업 간의 싸움은 주로 마케팅 경쟁으로 비롯된다. 가장 대표적으로 △코카콜라와 펩시 △버거킹과 맥도날드 △나이키와 아이다스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주로 지역 내 TV나 지면 광고를 통해 상대방 브랜드를 디스(diss)하면서 진행된다. 우리나라 광고시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해외에서는 종종 벌어진다. 

광고를 통해 벌어지는 '디스전'은 힙합씬에서 보던 그것을 연상시킨다. 예를 들어 펩시콜라를 구매하려는 한 어린이가 버튼에 손이 닿지 않자 코카콜라를 구매한 다음 그것을 발판삼아 펩시콜라의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발판이 된 코카콜라캔은 그대로 버리고 떠난다. 반대로 펩시콜라는 '무시무시한 할로윈 보내세요'라며 코카콜라 망토를 두른 펩시콜라캔의 사진을 올렸다. 그러자 코카콜라는 똑같은 사진을 두고 '모두가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어하죠'라며 응수했다. 

마케팅 수단을 활용한 기업 간의 싸움은 소비자들에게도 큰 즐거움을 준다. 이와 함께 브랜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제품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방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반 상승효과를 노린 '윈-윈 전략'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가전 양대 라이벌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TV를 두고 격렬한 디스전을 벌였다. QLED를 내세운 삼성전자와 OLED를 내세운 LG전자는 자사의 TV가 더 선명하고 우월하다는 점을 광고를 통해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LG전자의 OLED TV가 '번-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고 LG전자는 삼성전자의 QLED TV가 QD 필름을 붙인 LCD TV라고 강조했다. '번-인 현상'은 OLED 패널에 장시간 같은 영상이 재생될 경우 LED 소자가 타버려서 잔상이 남는 것을 말한다. 

TV 광고로까지 번진 이 디스전은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특히 최근에는 경기 침체에 따른 TV 시장 위축의 영향으로 삼성전자가 OLED TV를 내놓고 LG전자가 QNED TV를 내놓으면서 양사의 차별점이 사라진 상태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생존을 위한 혁신 전략이 절실한 상황에서 기업 간에는 경쟁보다 협력이 더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과거 재계 양대 라이벌이었던 삼성과 현대차는 진작에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심지어 삼성전자는 OLED TV를 내놓으면서 대형 OLED 패널을 LG디스플레이에서 공급받는다.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스마트폰 경쟁사인 애플을 상대로 종종 디스전을 건다. 그러나 애플은 대응하지 않는다. 만약 삼성전자와 애플의 디스전이 성사된다면 동반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애플은 진지하게 삼성전자를 밟고 올라서려는 것으로 보인다. 

싸우지 않고 협력하는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일 수 있다. 그리고 긴 점유율 경쟁 끝에 홀로 우뚝 선 기업은 '승자'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삼성 스마트폰은 LG 스마트폰을 잃고 동반 상승 효과가 약해졌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대장이 된 현대차그룹은 세계 무대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과거 대우자동차와 경쟁했던 것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여전히 이동통신사들은 싸울 여지가 남았고 편의점이나 배달앱도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 특히 LG유플러스에게 무선통신 2위를 내준 KT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절치부심해야 한다.

싸우기 위해서는 라이벌이 필요하다. 라이벌과의 경쟁은 서로 발전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 글로벌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활동은 국가의 생존경쟁과 직결돼있다. 이럴 때 일수록 업계 라이벌 간의 경쟁을 통한 긍정적인 동반 상승효과를 노려야 한다.

여용준 산업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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