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도시정비 규제 풀었지만···법 개정·사업성 '산 너머 산'
[초점] 도시정비 규제 풀었지만···법 개정·사업성 '산 너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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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 과제 79개 중 46개 법·시행령 개정 사안···'실거주 의무 폐지'법도 결국 불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서도 의원 간 입장 차이 분명···"총선만 이기자는 식 정책 안돼"
"규제 완화해도 수익성에 영향 없어"···사업성 있는 곳만 선별 수주하는 건설사들
아파트를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의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여의도 재건축 아파트 일대 모습. (사진=연합)
아파트를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의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여의도 재건축 아파트 일대 모습. (사진=연합)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정부가 1.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상당 부분 완화하며 올해 주택 100만호 공급을 약속했지만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연초엔 '실거주 폐지'도 발표했지만 결국 무산된 것처럼, 이번 대책에서도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 적지 않아 실행 여부를 장담할 수 없어서다.

12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1.10 부동산 대책 관련 세부 추진 과제는 총 79개로, 이 중 절반 이상인 46개가 법 또는 시행령 개정 사안이다. 특히 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는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란 의미다. 지난해 2월 여당 의원이 발의한 '실거주 의무 폐지'법도 1년 내내 국회를 떠돌다 결국 야당의 반대로 이달까지 처리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결국 이 법안이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대표적인 규제 완화는 재건축에 대한 '패스트 트랙' 도입으로, 준공 30년이 넘으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허용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즉 안전진단은 사업인가 전까지만 받으면 되고, 재건축 추진위 구성 및 조합설립 인가 신청을 받는 절차와 병행도 할 수 있어 사업 기간이 평균 3년 단축되는 효과를 갖는다.

문제는 도시정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형 비아파트의 공급을 활성화하고 지방 미분양 주택 소진을 위한 세금 감면도 법 개정이 필수다. 향후 2년 동안 준공되는 전용 면적 60㎡ 이하 소형 다가구주택, 도시형생활주택, 공동주택(아파트 제외)에 대해 최초 취득세를 최대 50%까지 감면해 주는 방안은 지방세 특례 제한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 밖에도 도시형생활주택을 300가구 미만으로 지어야 한다는 세대수 제안을 폐지한다는 대책은 주택법 개정 사안이며, 단기 등록 임대 제도를 다시 살리고, 자율형 장기임대를 도입하는 것은 민간임대주택법 개정이 필요한 조항이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난 10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여야가 재건축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제도 개선을 하자는 데 합의가 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며 "기본 정신은 합의가 돼 있기에 국회 통과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취재 결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도 의원 간 입장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당인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이미 1기 신도시 특별법 심사에서부터 안전진단 면제 사항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변인도 이번 대책에 대해 "명백히 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항을 야당과 아무런 소통 없이 즉흥적으로 정책을 발표했다"며 "(대통령은) 총선만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마구잡이로 던져대는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책을 멈춰야한다"고 지적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규제완화의 영향이 큰 지역구의 야당 의원들은 규제 완화에 동의하는 분위기지만, 단기 등록 임대 도입 등의 관련 법 개정안에 대해선 전혀 합의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 총선을 앞두고 어떻게 합의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2~4월 중 법안들이 발의될 텐데 PF관련  정책은 중요 사안이니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안전진단의 경우도 사실 야당이 동의할 명분이 크진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건은 민간 주택 사업 활성화다. 현재 정부가 2023~2027년 공급 목표로 제시한 270만호의 절반가량(48%)이 민간 물량인데, 재건축·재개발 사업 부진의 원인은 처음부터 규제가 아닌 '사업성'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안전진단 규제 완화 등의 대책이 재건축 사업의 수익성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민간 건설 활성화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건설사들은 부동산 침체기를 겪으며 사업성이 있는 곳만 사업에 선별적으로 나서는 등 '옥석 가리기'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1~2년간 신속 통합기획(정비계획 수립의 복잡한 절차를 줄이고 신속한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는 재건축·개발 규제 완화책) 재개발 후보지 총 57곳을 선정했으나, 서울 강남, 용산, 여의도 등을 제외하곤 현재 본격적인 사업절차에 들어간 곳도 없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시장이 좋을 때는 안전진단이 있어도 재건축 사업이 더 활발히 진행됐고, 안전진단 규제 자체가 과도한 재건축 분위기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라며 "재건축 부진의 핵심은 규제가 아니라 사업성에 있기 때문에 이번 규제 완화 대책으로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의 활성화를 이끌어내기엔 무리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김효선 부동산수석위원도 "지난해에도 규제 완화 후 다수의 단지들이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결국 공사비 증가와 추가 분담금 등 사업성에 문제가 있어 사업 속도가 나지 않았다"라며 " 서울 여의도와 목동 등 재건축 사업성이 우수한 단지와 그렇지 않은 단지들의 양극화만 더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 대책으로 오히려 노후 아파트 호가가 올라 재건축 추진이 어려워 질거란 전망도 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이번 규제 완화로 새로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진 곳은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생긴다"며 "집값이 높아지면 재건축의 수익성은 더 떨어지고, 결국 실 사업은 하지 못하면서 집값만 오르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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