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전술 행동 아닌 전략적 판단하라
[홍승희 칼럼] 전술 행동 아닌 전략적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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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은 판이 바뀌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초강대국 미국은 점점 더 초조함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당장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잃을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의 힘이 약화되어가는 징조들은 여러 군데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2차 대전에서 막강한 물량으로 세계 전역에서 전쟁을 이끌어나갔던 미국은 전후 복구 과정에서 많은 원조물자들을 앞세워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파워를 과시했고 그 영향력은 80년 이상 세계를 리드하게 만들었다. 냉전시대를 거치며 유일한 대항국가였던 소비에트연방을 붕괴시키며 더 이상 적대할 국가가 없는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자리를 굳히기도 했다.

그러나 인류역사에서 영원한 권력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소련이 붕괴하고 그 중심인 러시아의 힘은 약화됐지만 그동안 빗장을 걸어 잠갔던 중국을 굳이 국제사회로 끌어내 '죽의 장막'을 거뒀다고 축배를 들었던 미국은 예비된 큰 시장만을 바라봤던 오만한 판단의 결과로 급속히 커가는 중국에 불과 30여년 만에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

2차 대전의 와중에서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내부적으로 곪아가던 중국이 분열하며 실제적으로 2차 대전 연합국의 일원으로 국제회의에 참여했던 장개석 정부가 대만으로 밀려나고 중화민국이라는 이름만 유지한데 비해 본토를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정부가 중국 대륙을 차지했다. 수교 과정에서 그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만이 유일한 중국이라며 열렬한 구애의 모습을 보였던 미국은 긴 역사 속에서 여러 형태의 전란과 전략적 싸움에 능숙했던 중국의 저력을 너무 가볍게 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중국이 당장 미국과 맞장을 뜰 정도는 아니다. 다만 미국은 자국의 60~70% 수준까지 뒤쫓아 오는 2위국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조심성을 가진 강대국이라는 점이 오늘날 미·중 분쟁을 지속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제외한 것도 한국의 성장 수준에 경계심을 보인 탓이고 한국이 그에 대해 보다 공격적으로 나섰던 것도 한국의 성장 정도가 일본의 70% 수준에 이르러 관계를 뒤집을 만하며 반격의 시기를 미루다가는 영원히 짓밟힐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에 비굴한 타협 대신 당당히 맞서는 선택을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시진핑의 중국이 중국답지 않게 성급한 행보를 한 측면이 미국의 경계심을 더 자극한 것도 있다. 등소평이 개혁개방의 기간을 100년 정도로 보고 그 전까지는 몸을 낮추도록 유언했지만 시진핑은 그런 인내심을 갖기에는 욕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재의 미국이 그런 중국의 반격에 충분히 효과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견해서는 미국의 압박이 중국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것처럼 보이고 그 와중에 지나치게 서두르며 충분히 내실이 다져지지 못한 성장의 그늘에서 곪아가던 중국 취약한 경제시스템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 또한 예상보다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당장 값싼 중국제 소비재의 덕을 입던 미국 소비자들은 수그러들지 않는 고물가에 여전히 시달리고 그로 인해 금리인상 추세를 뒤로 물리지 못한다. 이는 달러의 신용도를 표상하는 미 국채 가격 하락과 그에 따른 미국 내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중국을 구석으로 몰기 위해 그간의 우방국들에게 연대를 요구하지만 미국이 가장 신뢰해온 유럽에서부터 저마다 처한 경제적 상황들이 만만찮아 적극적 편들기의 기세가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나 요즘 유럽은 경제적 현안 외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코앞에 닥친 문제에 더 다급하다. 전 세계 경찰을 자임하던 미국은 더 이상 없고 지상군 파병은 기피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과정에서 예전과 같은 막대한 군수물자 지원에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확전이라도 되면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위기감만 더 커진 상황이다.

게다가 전쟁 수행능력이 전성기에 비해 현저히 낮아진 미국이 툭하면 금융을 무기로 들이밀었던 관성대로 러시아에 대해서도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식으로 과도한 금융제재부터 하고 나서며 적의 세력을 불려주는 우를 범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을 너무 강력한 빌미를 주어 스스로의 영향력을 갉아먹었다. 중동지역도 점차 힘이 빠져가는 미국에게 신뢰를 거두기 시작했다. 일본은 입과 발이 따로 노는 외교행보로 실익을 챙길만큼 챙기고 있다.

이런 시대적 격변 속에서 편 가르고 줄서는 수준에 머무는 것을 넘어 다 삭아버린 이념의 잣대까지 다시 끄집어내는 한국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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