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세상 모든 것이 STO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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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빈 펀블 개발총괄 본부장

세상의 모든 것은 소유와 거래의 대상 즉, 자산(asset)이다. 그러나 너무 크고 비싼 자산은 한 번에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거래할 수 있다. 세상의 자산 중 60% 가 아직 이러한 비유동화 상태에 있는데, 이를 여러 개의 단위로 조각 내어 유동화하는 방법 중 지금 가장 각광 받는 것이 ‘토큰 증권 발행(STO‧Security Token Offering)'이다. 아무리 큰 물건이라도 수백, 수천 개로 나눈다면 거래가 쉬워지고 거래량이 늘어나며 경제의 규모가 커지는 장점이 있다.

1997년 미국의 한 시장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자산의 56%가 비유동화 상태였다. 비유동 자산은 높은 재고, 낮은 거래량, 불완전한 가격 결정에 의해 유동 자산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여기에는 건물, 토지, 자원, 자재, 인프라, 항공기/선박, 예술작품, 전산 인프라, 사모펀드 등의 유형 자산과 더불어 비공개 주식, 헤지 펀드, 인프라 프로젝트, 대체 투자 증서, 개인 신용과 같은 무형 자산들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자산들은 투자 단위의 제약으로 일정 이상 부유한 투자자나 기관만 접근할 수 있는데, 이를 토큰화한다면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16조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시장조사의 내용이다.

가상화폐도 증권이 될 수 있다. 모두가 투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투자가 쉬워지면 위험도 증가하고, 이는 결국 국가와 금융당국의 규제를 불러 온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1차 대전 후 유럽의 극심한 불황을 틈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광란의 20년대'로 불리는 대호황의 시기를 맞았다. 불과 수 년 사이에 경제 규모가 몇 배로 부풀었으나 결국은 대공황으로 끝을 맺었다. 호황기의 무절제한 투자는 많은 투자자들을 절망적 상황으로 내몰았고, 연방정부는 투자자와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증권거래법을 제정함과 동시에 증권 시장을 감독할 기관으로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설립했다.

STO의 성립 과정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2017년 암호화폐 시장은 극단적인 버블의 양상을 보였고, 이는 당국의 적극적 개입을 불러왔다. SEC가 선두에 서서, 암호화폐가 증권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브레이크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리플(XRP)이 있는데, 당시에 시작된 SEC와 리플 간의 소송이 현재도 진행 중이다. 더불어 수많은 암호화폐들이 SEC의 제재를 받고 모금이나 프로젝트 자체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 상황을 고심하던 암호화폐 업계는 거꾸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증권법을 지키지 않는 증권이어서 문제라면, 증권법을 지키면 되지 않을까? 여기서 STO가 시작되었다. 핵심은 KYC 를 통한 AML 이다. KYC(Know Your Customer)는 투자자의 신원을 확인하라는 명령이고, AML(Anti Money Laundering)은 자금 세탁을 방지하라는 목적이다. 즉 적법한 투자자로부터 추적 가능한 자금만 투자 받음으로써 불법적인 자금의 흐름을 막는 것이다. 이를 통해 투자자와 시장을 보호하는 것이 증권법의 목적이다. 

KYC/AML과 그에 따르는 규제들을 지킴으로써 증권법에 부합한다면, 암호화폐도 적법한 증권이 될 수 있다. SEC의 규제를 벗어나는 것은 물론, 암호화폐 시장과 비교할 수 없이 방대한 기존 투자 시장에 편입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점에 주목한 첫 번째 주자가 폴리매쓰(POLYMATH)다. 이들은 암호화폐의 스마트컨트랙트에 KYC/AML을 도입해 증권법에 부합하고자 했다. 이후 이들이 내어놓은 개념은 이더리움 등 주요 암호화폐 플랫폼에 성공적으로 도입돼(ERC-1400 등) 지금의 STO 시장의 표준이 됐다.

2017년에 미국의 암호화폐 시장을 중심으로 STO에 대한 논의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났지만, 2018년 이후 암호화폐 침체기와 팬데믹으로 인해 STO 시장의 성장은 기대보다 둔화됐다. 그러나 자산의 증권화에 대한 장기적 요구는 여전히 강력하다. 미국에서는 SEC의 지시 감독 하에 토큰증권의 발행과 유통이 자리를 잡았다. 싱가포르에서는 MAS(금융관리국)의 적극적 지원 하에 ADDX 를 중심으로 STO 시장을 일찍부터 열었고, 유럽의 경우 조금 늦었지만 EU 에서 'Tokenise Europe 2025' 이니셔티브를 발족하면서 글로벌 자산 토큰화에 대비하는 발걸음을 떼었다.

우리나라는 금융 제도의 보수성에 비해 시장 진입은 빨랐다. 2019년 카사코리아를 시작으로 펀블, 소유, 비브릭 등의 부동산과 뮤지카우, 테사 등 예술작품, 뱅카우의 한우와 같은 다양한 자산에 대한 조각투자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자본시장법 등의 관련법은 아직 개정되지 않았지만,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혁신금융서비스 라이선스로 허용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늦어도 2025년이면 다양한 자산이 법과 제도의 보호 아래 토큰증권(Security Token)의 형태로 자유롭게 거래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TO가 경제와 생활의 많은 영역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까? 다수의 경제 전문가와 국가 기관들은 향후 10년 이내에 모든 자산의 10% 내외가 토큰증권의 형태로 유동화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리나라의 부동산만 따져보아도 천조 원이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들의 논의가 지나친 낙관론일 수도 있지만, 자산이 토큰화되면서 유동성이 극대화되고 경제 규모가 커지며 개인들의 생활 형태까지 바뀌어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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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2023-08-03 09:48:19
좋은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