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청년구직 두번 울리는 '보이스피싱'
[데스크 칼럼] 청년구직 두번 울리는 '보이스피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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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지인은 보이스피싱 사건에 연루된 아들의 이야기를 하소연했다.

대학생인 아들이 용돈이라도 자기 힘으로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던 중 음원 관련 일을 접하게 됐는데, 해당 회사 측은 채용 조건으로 휴대폰에 들어갈 유심칩을 보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사회 경험이 적은 지인의 아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유심칩을 보냈는데 이게 화근이 됐다. 해당 회사가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으로 밝혀지면서, 유심칩을 무심코 보낸 지인 아들 역시 보이스피싱 범죄 가담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통장이나 카드, 신분증, 유심칩 등을 대여하거나 전달했을 경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지인은 아들의 억울함은 둘째 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전과 이력을 남길 수 없다는 절박감에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변호사 도움 없이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를 입증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더구나 경찰에서 검찰로 조서가 넘어가는 순간 '빼박'이 돼 전과자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고 한다.

보이스피싱의 경우 사회적 이슈라 마약과 같은 조직범죄로 취급받는데, 미필적 고의(어떤 행위로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심리 상태)만 인정돼도 사기방조죄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초범이거나 죄질이 가벼워도 집행유예를 받는 경우가 허다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변호사 수임료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법무법인 규모, 변호사 이력 등에 따라 비용 차이가 있지만, 지인이 수소문 끝에 알아본 변호사 수임료는 3000여만원. 적게 잡더라도 10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는 게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평생 주홍글씨가 따라 붙을 수 있는 자식의 인생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서민들 눈높이에선 값비싼 인생교훈으로 위안삼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면 다행이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이 던진 '고액 알바' 미끼를 무는 젊은 세대들은 절박한 환경에 놓인 경우가 대다수다.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마수가 최근 2030청년 구직자들에게 집중된 것도 이런 심리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2021년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루돼 피의자로 전락한 사람 중 2030청년 구직자 비중은 63%를 차지했다. 보이스피싱 피의자 총 2만2045명 중 20대 이하가 9149명(41.5%), 30대가 4711명(21.4%)으로 총 1만3680명에 이른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모 찬스'를 쓸 수 없는 이들은 하루아침에 '인간 대포통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버전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얼마 전 금융당국이 갈수록 교묘하고 대담해지는 보이스피싱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보이스피싱의 사기 수법을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금융사기 의심거래를 실시간 탐지, 사전에 예방하겠다고 밝혔다. 범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시에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피해자 구제 역시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다.

더구나 용돈이나 급전을 벌려다 전과자 오명을 뒤집어 쓸 경우 취업 등 여러 방면에서 불이익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낙오자를 양산한다면 사회적으로도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금융 당국이 이번 대책에서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았는지 되새겨 볼 대목이다.

특히 변호사 비용을 댈 수 있는 재력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조력 여부를 판별하는 감별기가 된다면, 그 사회가 상식과 공정이 통하는 세상이라 할 수 있을지 반문해 본다.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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