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고혈압 경제의 딜레마
[홍승희 칼럼] 고혈압 경제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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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전통사상은 인체를 소우주라고 전한다. 인체의 원리를 파악하면 우주의 원리도 이해할 수 있고 우주의 법칙을 알면 인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는 논리다.

이는 자연의 법칙에도 일반적으로 맞아떨어지지만 인간 사회의 구조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는 문화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지혜가 늘어난다.

그런 관점에서 경제 시스템에 같은 원리를 대입하면 현재의 경제시스템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진단해 볼 수 있다. 굳이 전문 학자들이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경제 전반을 인체에 비유해 보자면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다. 2차 산업인 제조업이 근육이라면 1차 산업은 뼈대에 해당할 수도 있겠다.

건강한 신체가 그 각각의 구성과 비율이 적절함을 뜻한다면 경제 또한 마찬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받아 온 오랜 가르침은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한다. 한자 표현을 빌리자면 과유불급(過猶不及).

뼈만 남은 신체가 건강하다 할 수 없고 근육만 지나치게 발달한 몸 또한 문제를 안고 있다. 마찬가지로 혈맥의 크기에 비해 혈액이 넘친다면 혈압이 높아져 위험한 상태가 된다. 혈맥에 불순물이 잔뜩 끼어 정순하지 못하다면 같은 양의 혈액이어도 고혈압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특히 지난 40년간 금융은 제반 산업의 생산성 증가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태환화폐제도가 폐지되면서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앞장서서 화폐발행의 증가속도를 높인 결과다. 이런 일이 후진국에서 일어났다면 그 나라는 이미 진즉에 결딴이 났을 테지만 이런 현상을 주도한 국가 화폐가 전 세계 기축통화 혹은 준 기축통화였기에 해당 국가들은 견뎌냈고 대신 그 여파를 맞은 약소국들이 골병이 들곤 했다.

정상적이라면 금융은 전체 산업생산력에 비례해 성장했어야 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미국은 금융을 무기화했다. 달러의 지배력에 대한 높은 자신감으로 현재적 혹은 잠재적 경쟁국들에 대한 금융제재를 통한 압박을 종종 사용했고 이제까지는 충분히 그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그런 미국을 뒷받침하기 위한 경제 이론들도 양산됐다. 대표적으로는 현대금융이론(MMF)이 꼽히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이론 역시 그런 강대국 중심 금융파워 행사를 뒷받침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국의 금융폭탄을 맞고 좌절을 맛본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MMF 이론을 실천한 결과는 세계 최대의 정부부채를 지닌 국가가 됐을 뿐만 아니라 그 부채규모가 지나치게 커짐으로써 재정정책의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각국 정부는 앞 다퉈 재정확대 정책을 펼쳤다. 위기상황을 돌파하거나 복지확대를 위한 재정확대 정책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일단 확대된 재정의 규모가 산업생산성을 초과하거나 위기대응으로 확대된 재정의 적기 회수에 실패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다.

재정확대가 경제활성화에 기반한 세수의 증가에 따른 것이라면 오히려 바람직하다. 그러나 단순히 화폐 발행 총량을 늘림으로써 당장의 정치적 부담을 회피해가며 손쉽게 쓸 돈을 늘려나감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위기를 키우고 있다.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지금 미국의 정부부채도 상당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경제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재정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팬데믹 종료를 선언한 이후 늘어난 돈을 회수하기 위한 정책이 생각만큼 먹혀들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번 달 미 연준은 일단 금리를 동결했지만 미국의 물가는 여전히 목표치에 비해 상당히 높다. 따라서 금리인하를 원하는 금융시장의 기대가 조만간 충족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금리 동결은 경기와 물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선거를 앞두고 금융시장의 요구와 타협한 혐의가 짙다. 전쟁, 재해 등 물가를 위협하는 경제 외적 요인들은 다양하지만 그런 요인들은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쉽사리 해소된다. 그러나 정치적 타협은 상황을 서서히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향후 되돌리기를 어렵게 만든다.

지금 경기를 놓칠까 두려워 부동산 규제를 마지막까지 죄다 풀려고 나서는 한국의 선택은 그보다 더 극악하다. 금리를 올리면서 한편에서는 자금을 풀어 금리인상의 효과를 상쇄시키고 갭 투자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좀비화한 건설사들까지 끌어안고 가며 부동산 불패신화를 되살리려는 위태로운 선택이 30년 전 일본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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