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금융 소비자의 비명
<홍승희 칼럼> 금융 소비자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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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직업적 글쟁이의 객관적 위치 떠나서 CD 연동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소비자 입장에서 얘길 시작해보려 한다. 최초 대출일로부터 2년이 채 안됐다. 그동안 금리는 6.25%에서 7.72%(본인 대출 은행의 경우)까지 올랐다. 이미 7.78%까지 올린 데도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려나 모르겠다. 혹시 다음 달엔 8%를 넘어서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된다.

덕분에 그동안 중도상환수수료를 물어가면서까지 대출금의 20%를 갚았음에도 불구하고 매달 지불하는 대출금 이자는 거의 비슷하다. 고정금리 대출도 있었으나 연리 0.35%의 차이에 혹해 오늘날과 같이 빠른 속도로 금리가 오를 가능성을 무시하고 연동금리 대출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다. 당시의 국내외 금리 동향이 빠르게 저금리 추세로 치달아 갈 때인지라 반등이 있을 것을 염두에 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승속도가 그리 빠를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러니 누굴 탓할 형편은 못된다.

그렇다고 불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 나도 그 속에 꼭 들어있기 마련인 인재의 요소들을 찾아내 그것만 크게 부각시켜 물고 늘어지고픈 심정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금리 문제에 있어서 불만은 늘 그 변화 자체보다 폭과 속도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부지런히 갚아나가고자 해도 금리가 오르는 속도를 뒤쫓기 힘들면 화가 나는 거다. 당연히 갚을 빚을 갚아나가는 데도 짜증이 나는 것이다. 이게 심리적으로 보자면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옛 속담의 심뽀(표준어는 심보가 맞는 모양이나 이렇게 써서는 말맛이 안 난다) 비슷한 것일 터이다.

그런데 모든 변화가 그렇듯 그 속도와 폭의 문제가 그리 간단히 무시해도 좋은 변수가 아니다. 개인 소득 평균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빠른 금융비용 부담 증가는 당연히 금융 사고의 증가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이 거짓말을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속도가 그 정도로까지 위험하다고 협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금 상태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위험도가 가파르게 상승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봉급생활자들의 급여도 일부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노조의 파워가 강한 대형 사업장 직원들 외에는 그다지 오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재의 실정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작년, 올해 소득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오르는지는 통계 찾아보기가 어려워 잘 모르겠으나 점포 차렸다가 1년 못 넘기고 걷어치우는 점포가 동네에서는 제법 자주 눈에 띄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거의 문어 제 다리 뜯어먹는 식으로 영세 자본들끼리 먹고 먹히며 생존해 가는 경향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그런 현상은 전반적인 경기와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자연도태의 하나일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조류를 선도할 새로운 아이템의 사업 개발이 안 된 채 몇몇 기성 업종에 과당경쟁이 발생하며 소수만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그 세계에도 존재할 터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민들 세계에 소득 증가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 관심을 둬야 탈이 없다. 소득은 늘지 않고 이자는 하루가 다르게 오른다면 탈이 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우리가 시스템의 붕괴를 우려하는 것은 사회시스템 전체가 부실해서가 아니다. 둑에 생긴 작은 구멍 하나를 묵과했다가 둑 전체를 무너뜨릴까 염려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으로 인한 거품 붕괴를 염려했듯 서민사회가 제 발걸음에 걸려 넘어질 만큼 지친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는 화수분이 아니다. 그렇다고 속 다 파먹고 내버려도 좋은 수박껍질도 아니다. 금융 산업이, 국가경제가 모두 다 거기에 뿌리를 내린, 이 나라의 텃밭임을 잊어서는 안 될 터이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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