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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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로 접어들기 직전 몇 년간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하는 많은 글들이 나왔다. 그 후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사회에서는 무언가 사회 문화적 분위기가 바뀐 듯 느껴지기도 한다. 권위주의적, 정형적 사회의 툴이 일부 해체되는 느낌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문화의 산업적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소위 한류 열풍은 그런 주장들에 힘을 실어줬다. 콘텐츠라는 말이 일상에 널리 유포, 사용되는 현상이 굴뚝산업을 대체한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사회 문화적 분위기에서는 분명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이 감지된다.

그러나 아직 산업 부문에서의 패러다임 변화는 미진해 보인다. 그 내부에서 어떤 변화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드러난 것만으로는 기업들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적응해 가야할 것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인다.

21세기를 정의할 코드로는 문화, 여성, 휴먼, 환경, 다양성, 소량 다품종 등 몇몇 서로 다른 듯하나 보기에 따라서는 공통점이 잡힐 듯한 단어들이 주로 포함돼 있었다. 인간중심적이고 여성문화적인 특성들이다.

이는 문화 부문에만 국한돼 쓰일 단어들이 아님이 분명하다. 집단주의의 흔적들이 지워지고 개개 인간의 각기 다른 욕구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 개성시대에는 권위주의가 자리 잡기 힘들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대량생산품을 공급자 중심으로 판매하는 산업 패러다임은 계속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경제적 위기감을 느낀다면 그 가장 핵심적 요인이 바로 계획경제 시대의 산업 패러다임에 안주하고 있는 기업들의 안이함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대표 산업, 대표 기업이 아직은 대표적 소품종 대량생산 업종인 메모리 반도체와 자동차를 주력으로 삼고 있다는 점, 그 대표기업 두 곳에 한국 경제가 목을 매달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한국 사회는 그 두 기업에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변화가 긴요하다. 지금 대량생산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서 그 업종이 꼭 그 시스템에 안주해야만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가질 이유는 없다.

삼성전자는 지금 플래시 메모리에서도 세계적 지위를 확보해가고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소비자 중심적 공급 방법이 없는지를 연구해보면 방법은 찾아질 터이다. 기업경영에서야 말로 다른 어느 분야보다 역지사지의 지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간 대기업의 오만함에 너무 오래 젖어있어서 소비자 중심적 변화를 수용하기 버거워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자동차는 더욱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곧바로 소비자의 손에 닿도록 하려는 과욕만 버리면 충분히 다양한 소비자 욕구에 부응하며 21세기형 자동차 산업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공정에서 소비자의 선택사항이 충분히 반영될 수만 있다면 소량 다품종의 시대적 흐름에 충분히 합류 가능해 질 일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중차 라인과 별개의 전형적인 소량생산 체제인 명품차 부문을 도입, 독립적인 생산 운용체제를 갖춘다면 업그레이드가 충분히 가능한 산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 한국 기업들의 패러다임 변화를 수용하는 능력이 우려되는 부문은 환경문제에 관한 인식이다. 석유화학 부문처럼 대표적 공해유발 산업체들은 기후협약 등 갈수록 늘어가는 환경 규제를 염려하고 대비에 나서는 듯하다. 그러나 다른 부문들은 아직 지나치게 태평스러워 보인다. 향후 연간 비용 부담 200조 원이 거론되는 마당인데.

환경은 앞으로 상품시장보다 금융시장에서 유의미한 상품이 될 수도 있다. 이미 CO2 시장이 형성됐다고도 한다. 선물시장 형태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공해상품은 오히려 채권시장과 유사한 형태로 성장 발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궁극적으로 실물이 오고 갈 일이 없는 거래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체들이 환경 문제를 극복해야 할 장애로 인식한다면 앞으로 세계적 시장이 형성될 공해상품은 금융 쪽에서 오히려 관심을 갖고 접근해 볼 분야가 될 수 있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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