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하거나 매각하거나'…달라지는 은행권 본점 지도
'통합하거나 매각하거나'…달라지는 은행권 본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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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 이은선기자] 국내 은행권의 사옥 지도가 달라지고 있다. 시중은행은 인수합병(M&A)으로 본점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새 사옥을 찾아 떠나는 한편, 외국계은행은 어려워진 경영 환경 탓에 구조조정을 거듭하면서 본점을 정리하는 추세다.

◇ 새터 일구는 시중銀…업무연계 소통 강화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본점 직원들은 내달 'KEB하나은행' 출범 이후 인사와 조직개편이 단행되면 업무공간을 옮긴다. 현재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각각 청진동과 을지로에 본점을 두고 있는데, 내달 두 은행을 합치면 영업 관련 부서는 하나은행 본점(그랑서울 빌딩)으로, 재무·홍보 등 비영업 관련 부서는 외환은행 본점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하나금융 본사 건물에서 근무하던 하나은행 외환업무부, 업무지원부 직원들도 9월 이후 순차적으로 자리를 옮긴다. 사실상 2개 건물이 통합은행의 본점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다만 통합은행장이 자가 건물인 외환은행 본점으로 출근할 예정인 만큼, 상징적으로는 을지로 건물이 본점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의 경우 기존 본점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청진동 그랑서울 빌딩 일부를 임대해 사용해온 상태였다.

오는 2017년 완공되는 하나은행 을지로 본점에 통합은행 인력이 모두 입주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신사옥의 경우 외환은행 본점보다 건물 규모가 작아 통합은행 인력을 다 수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KB국민은행은 몇 번의 M&A를 거치는 과정에서 여의도로 사령탑을 옮겼다. 올해 1월에는 KB금융지주까지 을지로 시대를 접고 여의도로 이동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겸 KB국민은행장)이 여의도 본점에 터를 잡으면서 지주사 직원 200여명도 함께 옮겨가게 된 것. 사실상 지난해 'KB사태'의 원인으로 두 회사의 위치가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금융권에서는 적지 않았다. 거리가 멀었던 만큼 지주사와 은행 간의 소통이 자유롭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로써 업무 연계성이 높은 지주사와 은행 부서가 한 건물(여의도 본점)에서 일하게 됐지만, 상당수 부서가 여러 건물로 흩어져 있는 것은 여전하다. 현재 KB국민은행 본점 직원들이 업무 공간으로 사용하는 건물은 총 4개로, 여의도 본점(옛 주택은행 본점)과 서여의도 사옥(옛 장기신용은행 본점), 명동 사옥(옛 국민은행 본점), 여의도 세우빌딩 등이다.

건물별 입주 현황을 살펴보면 △여의도 본점은 지주사와 홍보·영업·회계·전략·기획 △서여의도 사옥은 IT·전산센터 △명동 사옥은 여신 △여의도 세우빌딩은 수신·마케팅 관련 부서가 주로 들어가 있다. KB경영연구소는 지주사가 여의도 본점으로 이동하면서 세우빌딩으로 옮겨 갔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사옥을 한군데로 통합하는 게 업무 효율면에서는 훨씬 낫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안이 나온 것은 없다"며 "매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윤 회장이 취임 당시 통합 신사옥에 대해 언급하며 "임기 중에 입주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첫삽은 떴으면 한다"고 발언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그간 KB국민은행은 통합 본점 설립을 위해 서울역 대우빌딩,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여의도 MBC 부지 등을 매입 대상으로 검토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반면 신한은행은 현재까지 남대문로 본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인력 확대에 따라 수년 전 옛 조흥은행 자리로 본점을 신축 이전을 검토했지만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교동에서 시작한 신한은행은 1988년 11월 현 본점 건물의 지분을 사서 입주했다. 이 자리는 조선시대에 돈을 찍어내던 옛 전환국으로, 국내 금융권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한 은행 관계자는 "풍수지리에 민감한 일본 주주들이 신한은행의 본점 이전을 꺼리면서 본점 이동이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신한은행 본부 인력은 본점과 순화빌딩, 옛 조흥은행 본점이었던 광교빌딩 등에 분산된 상태다. 신한은행 및 지주 관계자는 "본점 이전 계획은 전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계銀, 본점 매각·사대문 탈피

외국계은행은 비용 효율화 차원에서 역사성과 명분으로 지켜온 본점을 매각하는 추세다.

씨티은행은 지난 1997년 한미은행 시절부터 사용해온 중구 다동 본점을 2000억원 가량에 매각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매각이 완료될 경우 신문로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분산된 본점 인력과 함께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로의 통합 이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지난 1967년 서울지점으로 소공동에 처음 자리 잡았던 씨티은행은 1987년 준공된 신문로 씨티뱅크센터와 2004년 합병한 한미은행의 다동 빌딩을 거쳐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금융 중심지인 사대문 권역을 넘게 됐다.

현재로서는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마스턴리츠와 해당 빌딩 소유권의 19%를 보유한 대견기업의 이견으로 매각 작업이 지연되고 있지만,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이전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게 씨티은행의 목표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두개로 나눠진 본점이 통합해 들어갈 만한 임대 공간을 찾게 됐다"며 "매각 진행이 완전히 결론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내년에는 이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SC은행은 80년의 역사를 지닌 옛 제일은행 본점을 지난 4월 신세계그룹에 매각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71호로 지정된 해당 건물은 제일은행의 전신인 조선저축은행 시절(1935년) 남대문로에 자리잡은 이후, 건너편에 위치한 한국은행과 함께 국내 금융 중심지를 상징해왔다.

규모가 커진 제일은행은 1987년 본점을 종로구 공평동으로 신축 이전했고, 건물 인근에 백화점을 보유한 신세계 측은 2000년대 초반부터 건물 인수 의사를 타진해왔으나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2005년 SC그룹이 제일은행을 흡수한 이후에는 최근까지 SC은행의 충무로지점으로 사용됐다.

금융위기 이후 SC은행이 지점 축소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신세계 타운을 조성하려는 신세계 그룹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850억원에 최종 매각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SC은행은 신세계 유통망을 활용한 소매금융 채널을 확보하게 됐지만, 국내 은행 건물 중 두번째로 오래된 건물의 기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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