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올림' 내분이 가져올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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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박지은기자] 누군가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칭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평했다. 그같은 힘겨루기 끝에 다윗에게 기회가 왔지만 얕은 꾀에 제 스스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의 지난 수년간의 싸움을 우회적으로 비유하자면 이 정도로 요약될까.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백혈병 피해자 가족모임은 국내 모든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희망'처럼 인식됐다.

하지만 삼성전자와의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선 반올림은 더이상 다윗도 아니고 '약자(弱者)'라고 보기도 어려워진 모습이다. 눈 앞의 실리 탓에 내평개쳐진 명분 때문이다. 실제로 반올림은 삼성을 협상장까지 불러들인 동정론과 진정성은 뒤로한 채 내부 분열에 몸살을 앓고 있다. 8명의 협상단 중 6명이 삼성과 직접 협상을 하겠다며 반올림을 떠난 것이다.

반올림 협상단에 남은 피해자 가족은 황상기씨와 김시녀씨 둘 뿐이다. 그 외엔 이종란 노무사와 공유정옥 반올림 간사 등이 이들을 돕고 있다. 반올림을 떠난 이들은 '반올림이 삼성과 직접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전혀 소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반올림은 생각이 다른 이들과 함께 갈 수 없다고 비난했다. 양측의 속내야 명확히 알기 어렵지만 결국 보상금 문제가 내분의 발단이었다는 점을 어림짐작해볼 수 있다.

피해보상에 전향적으로 돌아선 삼성으로서도 답답할 노릇이다.한쪽에선 우선 협상과 보상을 원하고 다른 한쪽에선 장외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의 진짜 속내가 어떻든 회사의 공식 입장은 "혼란스럽다"로 정리된다. 삼성으로서는 8명의 협상단 중 6명이 떠난 반올림을 협상주체로 인정해야 하는지부터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삼성과 직접 협상을 원하는 피해자 혹은 피해가족들이 반올림을 거치지 않고 삼성으로 향할 가능성도 열렸기 때문이다.

일단 반올림은 물론 6명의 가족 모두와 협상을 이어나가겠다는 게 삼성의 공식 입장이지만, 중요한 의제에서 엇갈릴 경우 자칫 그간 협상이 물거품이 될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6명이 받아들인 삼성의 '우선협상' 제안과 반올림이 제안한 '산업재해 신청 전원 보상'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키운다.

결국 반올림의 내분으로 협상은 더욱 미궁에 빠져들었고 동정론은 되레 삼성으로 향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동시에 반올림은 '백혈병 피해자와 피해가족들의 대표'라는 입지가 훼손됐고 나머지 피해자 가족들은 협상의 추진동력을 크게 상실했다.

사실 이번 반올림과 삼성의 협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가 어떤 기업인가. 반도체 사업의 급성장으로 덩치를 키워온 세계 1위 기업이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백혈병과 난치병 등 여러 문제점이 독버섯처럼 피어났다. 삼성 뿐만이 아니라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하나같이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 7년간 백혈병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온 삼성이 보상 문제에 전향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반올림이 거둔 성과이기도 하지만, 산업재해를 바라보는 국내기업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반올림과 피해자 가족들이 더욱 책임감 있는 태도로 협상에 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대적인 사업재편을 통해 제 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삼성 역시 반올림의 분열을 핑계로 협상장에서 발을 빼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앞으로 남은 7차 협상에선 반드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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