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CEO리스크에 병드는 코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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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한수연기자] "한 달 전에 한창 상한가 찍을 때 들어간 건데 단단히 욕봤지. 코스닥은 이래서 안 돼"

한 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70대 투자자였다. 국내 모 대기업 부장을 아들로 둔 그는 주식투자가 소일거리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하루아침에 날린 수백만원 앞에선 태연할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코스닥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이 투자자의 분노를 산 상장사는 지난 22일 전 대표의 횡령 혐의에 거래가 정지된 현대피앤씨다. 이번에 밝혀진 이 회사의 횡령·배임액은 자그마치 122억 원, 자기자본의 70.52%에 해당하는 규모다. 횡령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기 하루 전 주가는 상한가였다. 낯설지 않은 그림, 또 개미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것이다.

2002년 코스닥에 상장한 테라리소스도 전 대표의 횡령·배임 혐의로 현재 상장적격성 심사 대상 여부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모회사인 예당 역시 지난 9일 상장적격성 심사 대상으로 결정돼 상장폐지 여부 검토에 들어갔다. 지난해 말 기준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예당의 소액주주는 1만553명, 테라리소스는 1만9788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아이디엔이 현 경영진의 배임혐의에 대한 피소설 조회공시 답변에서 "고소장 접수 사실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아이디엔은 지난해에만 118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입은 회사다. 올 3월에는 자본잠식률 50% 이상, 최근 2사업 연도 자기자본 50% 초과 계속사업 손실발생으로 관리종목에 지정된 바 있다.

이들이 속한 코스닥 시장이 나날이 위축되고 있는 것은 우연일까. 지난 4월 일평균 2조4000억 원을 기록한 거래대금은 5월 2조2000억 원, 6월 1조7000억 원으로까지 감소하다 이달 들어서는 지난 18일까지 1조500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증시 위축이 아무리 대내외 경기 불안 때문이라지만 상장사들의 잇단 횡령 배임 혐의 또한 코스닥 시장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내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탓에 대표가 회삿돈을 자기 주머니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어느 횡령 대표에 대해 "잠깐 빌렸다가 감사 전에 막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고 전했다.

하지만 개미들은 이런 속사정을 알리 없다. 한 기업의 CEO라는 이유만으로 공금(公金)을 비상금 정도로 여기는 행태는 명백한 범죄다. 코스피시장과 비교해 자금조달이 어렵다는 볼멘소리에 앞서, 보다 투명하고 정직한 경영을 통해 주주들과의 신뢰를 쌓아야 코스닥의 미래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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