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행장 35년 금융인생 마감
김정태 행장 35년 금융인생 마감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4.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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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銀 체질개선 기반 구축
조직장악 실패 평가 엇갈려.


은행가의 뉴스 제조기이자 스타 CEO로 명성을 얻었던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마침내 무대의 뒷면으로 퇴장했다.

전라남도 광산 태생의 김행장은 지난 69년 조흥은행에 입사 처음 금융계에 발을 디딘 이후 20여년 동안 증권가에서 몸담아온 증권맨으로 98년 동원증권 사장에서 주택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최초의 증권사 출신 행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주택은행장 취임이후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던 주택은행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해 1년만에 흑자은행으로 전환시키며 이후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황영기 현 우리금융회장으로 이어지는 증권맨 출신의 은행장 성공신화의 한 모델이 되기도 했다.

김행장은 이후에도 국민-주택간 합병을 이끌어낸데 이어 2001년 11월 1일 국내 최대 은행의 수장에 취임함으로써 일거수 일투족이 시장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 같은 과정에서 그는 ‘주주가치 경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은행권에 전파한 선도자라는 칭송과 은행의 공적기능을 무시한 ‘돈만 아는 장사꾼’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2001년 하이닉스 반도체에 대한 구제금융에 참여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맞서 통합은행의 안정이 우선이라며 거부한데 이어 지난해 LG카드 사태 때에도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자금지원은 수용할 수 없다며 금융정책당국과 신경전을 벌인 끝에 산업은행이 LG카드를 떠안도록 만들었다.

당시 시장과 주주로부터는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시장주의자로써의 면모를 인정 받은 반면 정부측으로부터는 국내 최대은행의 수장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낙인이 찍힌 끝에 이번 낙마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아울러 국민은행내에서는 국책은행으로 시작해 주택청약과 상호부금으로 대표되는 소매금융 전문은행이라는 자기한계에 봉착해 있던 국민-주택은행에 기업금융과 IB까지 업무영역을 확대하는 한편 시스템 중심의 여신관행 도입, 수익증권, 보험 등 2금융상품의 판매를 통한 수익원 다변화 등 체질 개선을 이끌어 내면서 장기적인 성장기반을 구축했다는 칭송과 조직통합에 실패하고 현실과 괴리된 선진금융시스템 도입과 최대 기반인 서민고객을 외면한 수익성 위주의 전략으로 은행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비난이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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