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ETF 상품 독창성 철저히 보호해야
[데스크 칼럼] ETF 상품 독창성 철저히 보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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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미국을 상장지수펀드(ETF)의 천국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지난해 12월 기준 3383종목이나 된다. 전세계에 상장된 ETF 수가 1만1869종목이라는데 28.50%나 차지한다. 운용자산 규모도 8조1150억달러로 전세계 시장(11조6340억달러)의 69.75%나 된다.

그렇다보니 미국 주식 전체나 나스닥, S&P500 등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부터 정보기술·금융·반도체 등 특정 섹터나 산업을 따르는 상품, 배당·현금 등 펀더멘털 지표를 따르는 상품 등 온갖 투자 상품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증시에는 지난해 말 기준 812종목이 상장돼 있다. 운용자산 규모는 121조1000억원(약 900억달러)으로 전세계의 0.77%밖에 안되지만, 종목 수로는 6.84%를 차지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놀라운 얘길 들었다. 미국 ETF에서 반도체를 의미하는 Semiconductor를 검색하면 불과 13종목밖에 안 나온다. 이 마저도 단어 전체를 다 입력하면 레버리지 3배짜리인 SOXL과 SOXS가 이탈해 11종목으로 줄어든다.

물론 Tech, AI, Magnificent 등 키워드나 NVIDIA, TSMC 등 종목명을 직접 입력해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반도체 지수를 직접적으로 추종하는 종목들은 소수에 그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상품명에 반도체가 들어간 종목은 32개나 존재한다. 얘길 해준 업계 관계자는 "이 쯤 되면 반도체에 올인한 시장"이라고 표현했다. 재미있는 농담처럼 들리지만 현업에 있는 당사자들은 피가 마르는 일이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얻은 아이디어로 상품을 만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구성의 상품이 떡하니 출시된다. 완전히 다른 상품이라도 성격이 비슷하면 이름이 거의 동일한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어느 한 쪽이 압도적인 성과를 내지 않는 한 투자자들이 나눠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인공지능(AI)나 로봇같은 테마성이 짙은 ETF는 트렌드가 생명이라 다수의 자산운용사가 경쟁적으로 상품을 출시하지만, 한 철 바람이 휩끌고 지나가면 운용자산이나 거래량이 0에 수렴하는 이름만 남은 상품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지난 4일 기준 하루 거래량 1000건이 안되는 ETF는 253종목이었다. 한 건도 거래가 안된 종목도 20종목이나 됐다.

한국거래소는 ETF의 독창성을 보호해 주기 위해 지난 1월 '신상품 보호제도'를 개선해 상장지수상품(ETP) 신상품 심의를 거쳐 독창성이 인정된 ETF에 대해서는 출시 후 6개월간 유사한 상품을 상장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제도가 시장에서 얼마나 효용성이 있을 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누가 봐도 유사한 상품이라고 판단된다면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상장 심사 기간을 지연시켜버리는게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업계는 지적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ETF 시장은 지난해말 기준 1년만에 순자산총액 43조원, 상품 수 137개가 늘었다. 그만큼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다. 

부디 ETF 상품의 독창성이 철저하게 보호돼 ETF 천국까진 아니라도 'ETF 맛집' 정도까진 자리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박시형 증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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