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시도에 유서까지 조롱"···게임업계 노동자 '페미니즘 사상검증' 도마 위에
"극단적 선택 시도에 유서까지 조롱"···게임업계 노동자 '페미니즘 사상검증' 도마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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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기사 공유에도 '페미니스트' 낙인···온라인 사이버불링에 회사도 가담
정당·시민단체,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 출범···피해자 법적·심리적 지원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이 6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도경 기자)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이 6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도경 기자)

[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 게임업계에서 원화가로 일하던 노동자 A씨는 이직 전 회사로부터 어느날 포트폴리오로 쓴 회사 게임의 원화를 전부 내리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고소의 이유를 묻는 A씨의 질문에 회사는 "당신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 작업한 당신의 모든 작업물을 새로 교체해야 하는데, 그 교체 비용을 지불하라"는 이유라고 답했다. 

A씨는 그간 온라인에서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힌 후 사이버불링(온라인 집단 괴롭힘)과 스토킹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상황에 회사가 직원 보호에 나서기는 커녕 오히려 고소를 빌미로 협박에 나선 것이다.

당황한 A씨는 변호사와 상담을 진행했고, 회사는 A씨가 "내 작업물은 회사에 귀속돼 있으니 원하는 대로 할 것이고, 다시는 회사의 작업물을 업로드하지 않겠다"며 "다만 손해배상과 고소 건에서는 해보시라. 나도 협박으로 고소하겠다"고 응대한 후에야 한 발 물러섰다.

SNS 게시글을 이유로 지독한 사이버불링을 당한 노동자 B씨는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어 유서를 쓰고 극단적인 시도를 했으나, 이후 자신이 작성한 유서가 인터넷 커뮤니티 여기저기를 떠놀며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던 것을 확인했다. 이들은 B씨의 SNS와 유튜브에도 찾아와 괴롭힘을 이어나갔다.

한국여성노동조합이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실시한 '페미니즘 사상검증' 관련 설문조사(육하원칙에 따른 주관식 응답)에 따르면 게임업계 노동자들로부터 △사이버불링(9건) △작업물 교체 및 고지없이 무단 수정(19건) △직장 내 괴롭힘(17건) △부당해고 및 계약해지(7건) △채용차별 및 입사 취소(14건) △SNS 검열 및 관리(9건) △계약서상 불이익 조항(2건) 등 총 7개 유형에서 77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일러스트레이터나 성우 등 자신의 작업물이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노동자들은 홍보나 입사를 위해 자신의 SNS에 포트폴리오를 쌓아야 하는데, 악성 이용자들은 이처럼 작업물이 네티즌에 노출되는 구조를 노려 게시글을 평가하고 '사상검증'의 잣대로 굴복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모욕이나 조롱 없는 개인적 감상이나 단순 기사 공유도 '페미'로 몰아가 사이버불링을 진행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게임업계 사상검증은 넥슨코리아가 지난 2016년 여성 폭력 문제를 겪는 여성들에게 법적 도움을 주기 위한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며 게임 '클로저스'의 성우를 계약 해지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됐다. 같은 해 시프트업은 '데스티니 차일드'의 일러스트레이터가 SNS 상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리트윗했다며 해당 작가를 교체했으며, 2018년에는 같은 이유로 넥슨, 네오위즈, 스마일게이트 등에서 총 12건의 계약 해지 혹은 작업물 교체가 이뤄졌다.

지난해 7월에는 '림버스컴퍼니' 개발사 '프로젝트문'의 일러스트 작가 해고 사건으로 그간 계약직 혹은 프리랜서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노동자 해고가 정직원 범위로 넓어졌으며, 지난해 말 게임업계를 뒤집었던 넥슨의 '스튜디오 뿌리'사태는 직원 개인에 대한 해고에서 하청 업체에 대한 꼬리자르기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한 응답자는 맞벌이 시대로 넘어가며 중년 남성이 살림을 자주 하지 않아 밥을 잘 챙겨먹지 않았다는 뉴스에 "우리 아버지도 엄마가 밥을 차려주지 않으면 내가 차려야했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온라인 상에서 페미니스트로 지목돼 사이버불링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응답자들은 △페미니즘을 지지해 이미 페미니스트로 낙인 찍힌 작가의 그림을 공유 △특정 여성 방송인을 옹호했다는 이유 △2022년 대선 직전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공약을 비판했다는 이유 등으로 남초 커뮤니티, 나무위키 등에 날조된 내용이 유포되거나 개인 SNS, 유튜브 채널에 모욕적인 댓글이 달리는 방식의 사이버불링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 집단적 괴롭힘을 일삼는 인원 중 일부는 '페미니스트'로 추정되는 노동자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회사에 작업물 교체나 해고를 요구하는 컴플레인을 넣고 있다. 공대위는 게임사들이 이러한 요구에 노동자 보호보다는 고소 협박 등으로 가해 행위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한 게임업계 노동자는 "지금도 많은 회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 등 게임 개발 참여자의 SNS를 검열하거나 작업물을 삭제하고, 개발에서 제외시키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며 "놀이처럼 퍼지는 일부 유저들의 악행에 업계가 힘을 실어주는 만행으로 많은 동료들이 하지 않아도 될 수정업무에 시달리거나, 제작한 작업물이 휴짓조각이 되는 등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상식적인 경우에는 회사 측에 작업물 교체나 노동자의 해고,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블랙컨슈머로 치부하고 넘어가겠지만, 회사들이 이런 폭력적 소비자에 부화뇌동해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사상검증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실정"이라며 "한 번 낙인이 찍히면 이직을 한다 해도 인터넷에서 행적을 끊임없이 추적당하기 때문에 결국 생계 유지도 힘들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채용 과정에서의 사상검증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응답자들은 면접 시 짧은 머리나 화장을 하지 않은 차림으로 갈 경우 일에 관한 질문보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지 혹은 군대에 대한 생각이나 성별 때문에 불합리한 피해를 받을 때 어떻게 처신할 건지 등의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답했다.

지난해 11월 말 서울 구로구 소재의 게임회사에 채용 면접을 본 한 노동자는 "면접 자리에서 넥슨의 '뿌리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면접자에게 본인의 생각과 걸맞은 답변이 나오는지 아닌지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져 당혹스러웠다"며 "지원 파트의 업무와 관련 없는 질문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도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지금 한국 게임업계의 현실임이 피부로 와닿았다"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6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 남녀의 성별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해서는 안되며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 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 

또 남녀고용평등법은 근로자의 모집, 채용, 임금, 교육, 배치 및 승진, 퇴직, 해고 등 모든 사항에 있어 남녀의 성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제2항에 따라 사업주는 업무와 관련해 고객 등 제3자의 폭언 등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강미솔 변호사는 "여전히 기업들은 직원 보호 의무를 다하기는 커녕 일부 게임 사용자들의 여성혐오・차별 언행을 방치하고 일부 게임 사용자들의 요구에 따라 계약을 중지하는 등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불이익 대우를 하고 있다"며 "문제 기업들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근로감독과 함께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은 취약 노동자들을 아우를 수 있는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유니온,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노동·인권 단체와 녹색정의당 등 정당을 포함한 13개 단체는 6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페미니즘 사상검증에서 비롯된 게임업계 여성 노동자의 부당해고와 사이버불링에 법적·제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를 출범했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지난 2016년 넥슨의 클로저스 성우 교체 사건으로부터 시작한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웹툰 등 콘텐츠 업계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돼 일터 전반으로 스며들고 있다"며 "수년간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범죄행위에도 기업은 적극적 가해자로, 정부는 방관자로 나섰고, 사회는 눈감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과 정부의 자정작용을 기대할 수 없는 현 상황에, 공대위 발족을 통해 사상검증을 공론화와 신고센터 운영 등 피해자들에 법적·심리적 지원에 나설 것"이라며 "필요 시 관련 입법 활동에도 나서겠다"고 말했다.

(사진=이도경 기자)
(사진=이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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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박 2024-03-14 14:20:11
성평등은 목적이고 페미니즘은 수단이다. 그러나 못적을 위한 수단은 페미니즘 뿐만이 아니며, 보편적 인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많다. 그렇다면 굳이 페미니즘이어야 하는가? 그냥 인간을 위해 노력하면 안되는 건가? 왜 굳이 페미니즘이라는, 성별을 나누어 논하기에 내재적 한계가 명학한 사상에 고립되려 하는가?

ㅇㅇ 2024-03-07 21:28:53
왜 맨날 시도만 하냐 ㅈㄴ 방구석에서 조용히 시도 하면 시도로 안끝날꺼같은데 신고 다해놓고 쇼만하니깐 시도로 끝나지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