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상화폐 '책임 핑퐁', 그 피해는?
[기자수첩] 가상화폐 '책임 핑퐁', 그 피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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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충분히 이걸(자금세탁방지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실명계좌 발급을 받아주는 것이고, 괜히 잘못했다가 이익 몇 푼에 쓰러지겠다 싶으면 못하는 것이다. 그 판단은 은행이 하는 것이지 금융당국이 할 순 없는 일이고, 그 정도도 할 수 없으면 은행 업무를 안 해야 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일 '가상화폐(암호화폐) 자금세탁 관련 책임이 1차적으로 은행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 발언이다. 실명계좌 발급에 대한 권한이 은행에 있는 만큼,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최근 은행권이 가상화폐 거래소의 자금세탁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실명계좌 발급 심사 과정에서 중과실이 없으면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한 거절이기도 하다.

은 위원장은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나 "전 세계적으로 자금세탁을 규제하고 있는데, 한국 금융당국만 은행에 면책을 해준다고 한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며 "(은행의 면책 요구는) 자금세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사실상 당국이 면책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발언 이후 시장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는 모양새다. 당국의 입장을 일면 수긍하면서도, 업계에선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면책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실명계좌 발급에 탄력이 붙을 것이란 기대감이 퍼졌던 터라 실망감은 더욱 크다.

당국의 강경한 태도에 거래소는 물론이고, 가상자산(가상화폐) 사업자 신고의 키를 쥐고 있는 은행권도 난감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잠재 리스크'와 '수수료 수익, 신사업 기회'를 저울질하던 와중에 다시 불거진 책임론은 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은행이 거래소 문제의 책임을 모두 떠안는 듯한 현재 구조로는 쉽사리 실명계좌를 내줄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당장 오는 9월까지 실명계좌를 발급받아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해야 하는 거래소 입장에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이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당국은 은행에, 은행은 거래소에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는 건 자명하다.

이미 가상화폐 시장에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다. 가시밭길이 예고된 거래소들은 나름의 기준으로 택했던 코인들을 신용도가 낮다는 이유로 돌연 무더기 상장폐지에 나섰고, 갑작스럽게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되거나 거래가 중단되는 코인에 투자한 이들은 큰 손해를 봤다.

혹자는 그대로 코인 차트에 매몰되기도 한다. 종일 차트를 들여다보는 건 일상이고, 어떤 변수가 생길지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한다. 코로나 블루에 코인 블루다.

물론 투자는 리스크와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투자자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이들이 서로 책임 떠넘기기 '핑퐁'에 몰두하는 사이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장임에도 투자자를 보호하는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가상화폐 시장은 부인할래야 부인할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 됐다. 그리고 이같은 상황은 이제서야 목소리를 높이는 당국의 무지 또는 방관을 자양분으로 해서 자라났음을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때문에 '당국은 그동안 뭘했는가'라는 질문에 보다 책임있고 적극적인 자세로 답해야 한다. 설사 사기가 판을 친다고 해도 그 속에 포함돼 있는 선의의 피해자를 침묵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규모 잡코인 솎아내기, 거래소 구조조정 속에서 피해를 줄이려면 필수적 평가요소나 절차 등 최소한의 지침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대로라면 시장의 안정은 커녕 혼란만 커질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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