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다주택자 잡기'가 능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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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사는 집이 아니면 파시라"

약 2년 반 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다주택자에게 놓았던 엄포는 올해에도 '허공 속 메아리'가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고가아파트에 대한 급매물이 늘고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도 멈췄지만, 정작 집을 팔겠다고 나서는 다주택자는 많지 않다.

되레 '헐값에 파느니 증여를 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이미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거래는 지난달 기준 1만6000여 건으로 전달에 비해 10% 가까이 줄어든 반면, 증여는 1327건에서 1347건으로 소폭 늘었다.

특히 비싼 아파트가 모여 있는 강남구의 경우 증여가 148건에서 230건으로 55%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아파트 매매가 10%가량 줄어든 것과는 반대되는 수치다. 증여할 때 증여세와 취득세를 납부해야 함에도 피 같은 양도세를 내는 것보다 낫다는 게 다주택자들이 두드린 '세금 계산기'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고위공직자는 어떨까. 이번에 공개된 재산 변동사항을 보면 집을 처분한 사람은 많지 않다. 청와대 참모진과 중앙 부처 장·차관, 국회의원 3명 중 1명은 2주택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로 나타났다. 

청와대의 '주택 처분' 권고에 따라 집을 매각한 다주택 고위공직자 중 상당수는 '강남 아파트' 대신 세종 등 지방의 주택을 팔아 보유 주택 수를 줄이기 바빴다. 고강도 대책에도 부동산은 훌륭한 돈벌이 수단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어찌 보면 이들의 선택은 당연하다. 정부가 강한 압박을 가한다고 하더라도 등 떠밀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파시라'고 할 때마다 다주택자들은 '똘똘한 한 채'를 틀어쥐고 더 좋은 절세 방법을 찾아 나설 공산이 크다.

지금껏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다주택자를 겨냥한 '집값 잡기' 강공 드라이브의 연속이었다. 8·2 부동산대책 때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지정을 통해 돈줄을 막았고, 12·16대책에선 주택 보유자의 종합부동산세율을 대폭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위공직자조차 선뜻 솔선수범을 보이지 못하는 방법을 다주택자들이 행할 리 없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이쯤 되면 정부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시장을 누르는 대책보단 '공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주택자들의 주택 수 줄이기에 관심이 없다. 정부의 의도처럼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놔 매물이 늘어나더라도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한계가 명확해서다.

2·20대책까지 현 정부 들어 스무 번 가까이 대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에서 '서울에서의 공급 대책'을 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는 수급불균형의 원인을 다주택자에게 찾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서울 지역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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