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재개발③] 서울시 갈팡질팡…상인들 "어느 장단에 따라야 하나"
[을지로 재개발③] 서울시 갈팡질팡…상인들 "어느 장단에 따라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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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보다는 체념…힘없는 임차인들만 죽어나갈 것"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세운3구역 거리 모습. (사진= 박성준 기자)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세운3구역 거리 모습. (사진= 박성준 기자)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우리가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나요. 그래도 (서울시에서) 직접 나와서 보시기도 하고, 실제 현장 상황이 어떤 지를 좀 봐야할 것 아닌가요. (재개발 사업을)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든지 이도저도 아닌 행정에 지역 상인들만 죽어나는 거 아닙니까. 답답합니다 정말."

서울 중구 세운3구역에서 30년 넘게 슈퍼를 운영해온 60대 부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들의 상황을 열변하는 중간중간에도 자조섞인 웃음을 내보이곤 했다.

22일 세운상가 일대를 돌면서 마주한 상인들의 얼굴에는 '희망'보다는 손을 놓아버린 '체념'의 얼굴에 가까웠다. 시장이 꺼낸 '재검토' 한 마디에 세운상가 재개발계획이 전면 뒤집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날 찾은 세운 공구상가단지에는 골목골목마다 문을 닫은 가게들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노란 천막을 씌운 구역 한 편으로 철거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관리가 되지 않은 건물들의 상가구역 모습은 제법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었다.

세운상가, 청계상가 등 중앙에 위치한 상가들에서도 활기를 띈 상가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고 그저 멍하니 TV, 모니터만 바라보며 점포를 놀리는 곳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공사장에서 날아드는 흙먼지와 시끄러운 소음에 지나가는 행인들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운 공구상가단지에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긴 이유는 재개발이 14년째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운상가 재개발사업은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공구상가단지를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세운 정비촉진사업(8개구역)으로 시작됐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무산됐다가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2014년 창의제조산업 중심의 '2020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사업을 재개했다.

2017년 세운상가의 관리처분계획을 인가받아 지난해부터 단계적인 철거에 돌입했고 이달 3-1, 3-4, 3-5 구역은 보상 협의를 마친 뒤 철거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재개발을 두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찬반 논란이 진행 중이었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세입자들은 서울시와 건설사에서 제시하는 보상비가 터무니없이 적다고 지적하면서도 보상이 적절하게 이뤄진다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3구역에서 40년 넘게 대형유리판을 가공하고 판매해온 60대 A씨는 "세입자들은 대부분 재개발을 반대하고 있지만 이미 일부 철거가 진행되고 있고 시에서 한다면 우리가 어찌 막겠느냐"며 이미 체념한 듯 말을 시작한 그는 "적절한 보상만 이뤄진다면 충분히 감내하고 옮길 의향이 있다"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재개발 이후에도 들어와 사업을 이어갈 수 있지만 공구 상인들은 사실상 폐업수순으로 현재 이야기되는 보상금액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평균 50㎡ 토지를 소유한 영세 지주들은 재개발이 지연돼 이미 임차인들 손에 보상을 쥐어주고 내보낸 상태로 가게 영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자가토지의 철물점을 운영하는 50대 B씨는 "각 지역별로 공구단지가 들어서고 온라인에서도 판매가 이뤄지는 이 때에 어찌보면 시대에 뒤쳐지는 동네일 수 있다"면서 "보상이 나온다고 해서 담배가게만도 못한 매출을 이어가고 있지만 더 이상 재개발이 지체되면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상가구역 내 노포(老鋪)들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에 박 시장이 지난 16일 철거와 관련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새로운 대안을 발표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14년간 이어온 사업을 뒤엎어 버리면서 재개발에 찬성·반대하는 모든 상인들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서울시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3구역에서 스프링을 도소매하는 60대 지주 C씨는 "서울시를 믿고 가만히 지켜보던 상인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도대체 어떤 방침에 따라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이제는 개발하든지 안하든지 크게 개의치 않고 그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확실하게 정하고 이를 번복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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