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신혼대출 등 정책금융 봇물···가계부채 관리 '비상등' 켜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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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부터 1.6% 금리로 5억 '신생아 특례대출'
정부-정치권 '엇박자'에 대출 수요 자극 우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 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 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정부와 정치권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으로 각종 특례대출과 공약을 내놓으면서 가계부채를 경상성장률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당국 방침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3일 금융권과 당국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주도로 최저 연 1.6% 금리로 최대 5억원까지 빌려주는 27조원 규모 '신생아 특례 구입대출'이 오는 29일부터 시행된다.

대출 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산한 무주택 가구가 지원 대상으로, 부부합산 연소득이 1억3000만원, 순자산 보유액이 4억6900만원 이하여야 한다. 기존에 연 2%대로 이용이 가능했던 신혼부부 '내집마련 디딤돌대출(부부합산 8500만원 이하)'보다 소득 여건이 크게 완화됐다.

특례금리는 소득과 만기에 따라 5년간 연 1.6~3.3%가 적용된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혼합)금리가 연 3% 중후반~5% 후반인 점을 감안하면, 고금리 시기에 초저금리로 대출을 이용할 수 있어 신혼부부들의 수요가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데다 출생 자녀수, 청약가입 여부 등에 따라 우대금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조건만 맞는다면 최저 연 1.2% 금리로 최대 5억원을 빌릴 수 있게 된다.

전세자금대출에 대해서도 신생아 특례가 시행된다. 대출 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산한 무주택 세대주면서 부부합산 연소득이 1억3000만원 이하, 순자산 3억4500만원 이하라면 보증금 5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최대 3억원까지 빌릴 수 있다. 이 때 특례금리는 소득·보증금에 따라 4년간 연 1.1~3.0%가 적용된다. 특례 전세대출 역시 출생 자녀수에 따라 우대금리가 적용된다.

정치권에서도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대출지원을 골자로 하는 저출산 해결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억원을 10년만기로 대출해주고, 출생 자녀수에 따라 원리금을 차등 감면해주는 내용의 '결혼-출산-양육 드림 패키지' 공약을 제시했다. 해당 공약에 따르면 1자녀를 출산하면 1억원을 무이자로 빌릴 수 있고, 2자녀는 '무이자+원금 50% 감면', 3자녀는 '무이자+원금 전액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여야에서 '저출생·저출산' 극복을 핵심 의제로 삼고 있는 만큼 총선일이 다가올수록 관련 공약은 추가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저출생 관련 주거공약을 별도로 발표하기로 했다. 주거공약의 핵심이 대출지원인 만큼 국민의힘에서도 야당에 버금가는 지원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해당 정부대책과 정치권 공약들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금융당국 방침과 상충된다는 점이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금융위원회는 올해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을 경상 성장률(4.9%) 이내로, 오는 2027년까지 가계부채 총량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 이내로 낮추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22년 신혼부부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1월 말 기준 국내 초혼 신혼부부(혼인신고 후 5년 이내)는 총 81만5357쌍이고, 이 중 자녀가 있는 부부 비중은 53.6%로 나타났다. 또 이들 초혼 신혼부부 가운데 대출잔액이 있는 부부의 비중은 89.0%에 달한다. 신혼부부 10쌍 중 9쌍이 대출을 안고 결혼생활을 시작한다는 의미다.

이를 바탕으로 단순 계산해보면, 자녀가 있는 초혼 신혼부부 중 대출을 받은 사람은 약 39만명이다. 민주당의 '결혼-출산-양육 드림 패키지' 공약에 따라 이들이 1억원씩 대출을 받을 경우 그 규모만 약 39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27조원 규모의 신생아 특례대출까지 고려하면 저출산 해결을 위해 수십조원의 대출이 집행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이는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방침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전 금융권에서 불어난 가계대출 규모는 총 10조1000억원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8%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105.4%, 2022년 104.5%에서 지난해 크게 낮아졌지만, 정부 주도의 각종 특례대출이 대출심리를 자극한다면 이 수치는 다시 반등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 주도로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이 결국 가계대출 증가세 주범으로 꼽히며 일부 중단됐던 사례가 있지 않나"라며 "금융회사들이 당국 목표치에 맞춰 대출 관리에 들어가더라도 DSR이 적용되지 않는 초저금리 모기지가 나오면 대출 수요에 대한 자극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관련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생아 특례대출과 관련 "소득 수준이 안 되는 차주에 본인이 감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자금을 빌려주게 되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며 "DSR 규제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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