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상처上] [르포] 더 이상 역전세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전세사기 상처上] [르포] 더 이상 역전세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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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부등본 확인해도 임대인의 전체 매물 목록·건물 전체 담보 알 수 없어
역전세 사태에도 전세 가격은 매매가의 70% 수준···간신히 '깡통전세' 면해
17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화곡동은 역전세 문제가 집중됐던 곳이다. (사진=박소다 기자)
17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화곡동은 역전세 문제가 집중됐던 곳이다. (사진=박소다 기자)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수천가구의 빌라를 사들인 뒤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1년이 됐다. 정부는 전세사기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관련 피해 예방 및 임차인 지원을 위한 각종 방안을 속속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곳곳에는 전세사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서울파이낸스는 빌라왕 사건 이후 달라진 전세시장 분위기를 2편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그 사건 이후 오히려 월세 매물이 늘어나 전세 매물은 찾기 어려워요. 이 동네에서 전세 찾는 사람들이 이제는 얼마나 꼼꼼하게 따져보겠어요? 임대인들도 부담이 생겨서 전세 대신 반전세로 내놔달라고 해요."

지난 17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화곡동은 역전세 문제가 집중됐던 만큼 공인중개소 벽면에는 전세 매물 광고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붙어있는 20여 개의 매물은 '매매'와 '반전세', '월세' 등만 있을 뿐이었다. 한 공인중개소에 들어가 전세매물이 있는지 물어보니 즉시 입주 가능한 곳이 있다고 했다. 한 건물에서 '빈 집'이 두 곳 이상인 빌라도 있었다. 

중개인을 따라간 건물은 1층 필로티를 포함해 총 4층, 2016년 신축 건물로 20여 가구가 모여사는 곳이었다. 방 3개 화장실 2개(전세가 2억3500만원)의 내부는 새 집처럼 깔끔해 집 자체만을 본다면 청년들이나 신혼부부가 바로 들어와 사는 것에 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중개인은 해당 건물에서 여러 호수가 빈 집인 것에 대해서 "'전세 사기'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잘 들어오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전셋값이 떨어진 지금이 오히려 들어오는데 적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역전세가 걱정된다면 HUG 전세보증보험에 들면 된다. 융자가 없는 집이기 때문에 가입이 가능하다"며 "임대차계약서에 전세 보험 특약을 넣어 보증 보험 미가입 시 전세 계약을 파기한다는 조항을 넣어주겠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그 자리에서 직접 해당 매물의 등기부등본을 보여주기도 했다.

(왼쪽) '빌라왕'이라고 불리는 수원 일대의 전세 사기 용의자 A씨가 소유했던 화성의 한 빌라. (오른쪽) 전세피해지원센터에 방문객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박소다 기자)
(왼쪽) '빌라왕'이라고 불리는 수원 일대의 전세 사기 용의자 A씨가 소유했던 화성의 한 빌라. (오른쪽) 전세피해지원센터에 방문객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박소다 기자)

그러나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다고 해당 집이 역전세로 부터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입주 예정자가 해당 임대인의 전체 매물 목록과 대출 리스트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빌라왕'이라고 불리는 수원 일대의 전세 사기 용의자 A씨도 이 점을 악용했다. 예를 들어 한 임대인이 건물 여러 채, 여러 세대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 여러 세대를 묶어 '공동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다. A씨는 20세대의 건물을 5세대·5세대·10세대로 묶어 공공 담보로 대출을 각각 받았다. 하나의 건물에 2~3개의 담보를 잡은 것인데, 등기부등본에는 건물 전체의 대출이 아닌 세입자가 입주한 집이 속한 각 공동 담보의 대출만 기재된다. 

5세대 공동담보에 속한 세입자는 해당 규모의 대출만 등기부등본에서 확인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대출이 건물 전체의 대출이라 착각하기 쉽다. 즉, 대출이 적은 건물이라고 판단해 계약을 진행한다. 심지어 공동담보물 세대수가 5개가 넘으면 등기부등본상 공동담보 설정 세대 수도 '5개 이상'인 것만 확인 가능하고 정확한 세대 수도 알 수 없다. 

또 융자가 없는 집이라고 해도 주택 여러 채를 소유한 임대인이 대출 이자를 내지 못하게 되거나 개인 파산에 들어가는 경우, 대출 채권이 없는 집도 경매에 부쳐질 가능성이 생긴다. 통상 빌라 경매의 낙찰가는 시세의 50~70% 수준이고, 부동산 시장 침체로 집값이 떨어질 경우도 대비해 주택 매매가의 70% 미만의 전세가 비교적 안전하다. 70% 이상인 경우 시장에선 '깡통 전세'라고 불린다. 

화곡동 빌라 경우 신축년도, 위치와 주택 내부 상태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부동산 전면에 붙은 매매 기준으로 방 3개·화장실 2개·전용 50~60㎡ 3억원 대의 매물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앞서 소개받았던 2억3500만원 전세 매물의 주택 상태와 큰 차이도 없어 보였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깡통 전세 사태가 '신축 빌라'에 집중된 것도 지목했다. 그는 "아파트의 경우 대지면적이 적어도 형성된 시세가 있지만 빌라는 해당 주택에 할당된 대지면적 규모가 중요하다"며 "구옥들은 집 크기 대비 70~80%까지 대지면적이 되지만, 신축 빌라 등은 호별 대지면적이 10~20% 수준이다. 경매에 들어갈 경우 제 값을 받기에 더 불리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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