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장사 눈총·말뿐인 혁신, 금산분리 '또 뒷전'···속타는 은행들
이자장사 눈총·말뿐인 혁신, 금산분리 '또 뒷전'···속타는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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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금융 이자익 비중 76%···규제 막혀 비이자사업 확대 요원
비금융사 출자한도 확대·이자장사 탈피 위한 규제완화 필요
8월 규제 완화 방안 발표 계획 돌연 취소···일정도 기약 없어
은행 고객들이 국민·하나은행 등의 자동화기기(ATM)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
고객들이 은행 자동화기기(ATM)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금산분리 규제 완화 방안이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은행권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은행권이 윤석열 정부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된 배경으로 '과도한 이자장사'가 꼽히는 가운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방안이 금산분리 규제에 막혀 실행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비이자이익 중심 성장 전략을 강조해온 만큼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전체 영업이익 중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75.7%를 차지했다. 금융지주별로 보면 △우리금융 87.8% △하나금융 76.3% △신한금융 72.2% △KB금융 66.5% 순이다.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주요 금융그룹 이자이익 비중(50~60%)과 비교할 때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이자이익 비중이 큰 은행 순이익이 전체 금융지주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컸다. 올해 상반기 4대 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9조1824억원으로, 이 중 은행 부문(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4.6%(6조8500억원)에 달했다. 금융지주별로 보면 △우리금융 95.7% △하나금융 91% △신한금융 64% △KB금융 62% 순이다.

금융지주 수익의 상당 부분이 이자이익으로 이뤄져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은행을 중심으로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출자산이 대폭 늘면서 금융지주사들의 몸집이 크게 불어났는데, 이를 두고 정부와 여론은 '과도한 이자장사'란 비판을 쏟아냈다.

그동안 이자이익·은행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금융그룹들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은행 인수합병(M&A)을 통한 포트폴리오 강화, 수수료수익 등 비이자이익 부문 확대와 같은 전략을 통해 이자이익에 편중된 수익구조를 개선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규제로 비이자이익 비중을 크게 늘릴 수 없다는 게 금융권 공통의 지적이다. 특히, 금융과 비금융산업 간 경계가 흐려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화되고, 기존에 없던 혁신금융 서비스가 등장하는 상황에서 과거 기준에 맞춰진 현행 금산분리 규제는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한 금융사들의 신사업 추진에 과도한 장벽이 되고 있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금융회사)과 산업자본(비금융회사)의 결합을 제한하는 규제다. 기업이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하거나 금융사 소유 기업이 부실화돼 예금고객에 피해가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규제지만, 금융과 산업 간 결합을 통한 혁신기술·서비스의 등장을 가로막는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은행권은 비이자이익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선 금융지주와 은행의 비금융회사 출자 한도를 현행 각각 5%, 15%에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지주와 은행들이 혁신 서비스를 영위하는 IT 기업 등의 지분을 크게 늘릴 수 있다면 보다 다양한 비즈니스 창출 기회도 늘어날 것이란 설명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사들은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 자본시장법 등 각종 규제에 엄격하게 묶여 있어, 뱅킹 애플리케이션(앱)에서 금융과 관련 없는 아이템을 탑재할 때 한계가 명확하다"며 "은행이 비금융 플랫폼 기업에 대한 지분을 늘릴 수 있게 된다면, 각종 규제와 상관 없이 재미있는 여러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금융산업 혁신 측면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현실에 맞게 완화하겠단 입장을 밝혀왔다. 이에 지난달 28일 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 출자 한도를 현행보다 확대하는 내용의 금산분리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하려고 했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돌연 발표 계획을 취소했다.

금융사가 비금융 영역으로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할 경우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면서 추가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당시 금융권에서도 횡령, 미공개정보 부당 활용, 계좌 불법개설 등 각종 사고가 터지면서 규제완화 방안을 발표할 시점이 아니란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현재까지 발표 재개 시점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다음달 국회 국정감사 기간 등을 고려해 연내 추진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부에서 9월 중으로 발표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의견을 좀 더 수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서 현재까지는 발표 시점을 명확히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금융사고와 별개로 금융혁신과 산업발전 측면에서 당국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에서 이자장사를 비판하면서 비이자이익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해주지 않고 있다"며 "투자일임업이나 이종산업 결합 관련 계획이 있어도 규제를 완화해주지 않으면 시도도 못해보게 되니, 현재 당국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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