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위험한 사업 확대냐, 선제적 투자냐···기로에 선 SK그룹
[초점] 위험한 사업 확대냐, 선제적 투자냐···기로에 선 SK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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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F 적자에도 시설·R&D 투자 확대···"기업 존속 위한 과감한 걸음"
배터리·바이오·반도체 주력 사업 247조 투자···친환경 사업도 23조
그룹 전체 차입금 100조 돌파···"정유 등 업황악화→재무부담 증가"
최태원 SK 회장이 27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에서 열린 '글로벌 텔코 AI 얼라이언스 CEO 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SK텔레콤)
최태원 SK 회장. (사진=SK텔레콤)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SK그룹이 재무적 부담에도 설비와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 있다. 신용평가사 측에선 “재무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적극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그룹 전체의 차입금이 이미 지난해 100조원을 넘어섰고, 최근 주요 계열사 실적 악화로 작년 말 잉여현금흐름(FCF)이 15조원 이상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SK그룹 내부에서는 지속 성장을 위해 R&D 투자를 늦춰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R&D 기반 혁신과 성장 40주년’ 연구발표에서는 이 같은 SK의 현 상황을 둘러싼 의견이 나왔다. 

연구발표를 맡은 이지환 카이스트(KAIST) 교수는 "재무 부담이 늘기 때문에 R&D 투자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건 통상적 생각"이라며 "기업의 성장과 혁신은 어디서 나오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기존에 하고 있는 것만 유지해선 존속·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남들보다 두 배로 뛰는 건 결국 R&D일 수밖에 없다. 기술에 기반해 우리 사회와 글로벌 경제를 선도하는 기업일수록 더더욱 R&D에 투자해야 하고, 이것이 R&D 매니지먼트가 주목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함께 연구를 진행한 송재용 서울대 교수도 "전략은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정유·석유화학 기업들이 R&D 투자에 소홀했던 것이 현 시점에서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경쟁사 대비 R&D에 선제적으로 투자한 SK의 전략 덕분에 정유·화학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이들 연구팀은 최종현 SK 선대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적극적인 R&D 투자가 국내 재계 2위인 SK그룹을 일궜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최종현 선대회장이 유공 인수 후 R&D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982년 '종합에너지 기업 전환' 선언에 이어 1983년 기술개발연구소를 설립한 것을 그 예로 제시했다.

최 회장은 최근 ‘딥 체인지’(근본적 혁신)를 전면에 내세우며 SK이노베이션을 포함한 전사의 사업전략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정유·화학 기업에서 그린 에너지 기업으로 전환을 내세우며 배터리, 분리막, 윤활기유, 넥슬렌, 신약개발, 친환경 신사업 등에 나서고 있다. 

2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SK이노베이션 R&D 기반 혁신 성장 40주년' 연구발표가 열린 가운데 이지환 KAIST 교수가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2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SK이노베이션 R&D 기반 혁신 성장 40주년' 연구발표가 열린 가운데 송재용 서울대 교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이처럼 SK그룹이 R&D 투자 확대 기조를 밝히고 있지만, 그룹 전체의 재무 구조 악화를 우려하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는 지난 24일 보고서를 통해 SK가 최근 대규모 투자를 확대하면서 재무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반도체와 정유 등의 업황이 악화됐음에도 투자를 줄이지 않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기평 측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메모리반도체 업황 악화와 유가 하락, 정제 마진 감소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며 "투자 부담 확대로 잉여현금흐름(FCF)은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어 "주력 계열사들의 영업실적 부진과 운영자금, 설비투자 관련 외부 자금 조달이 지속하면서 차입 부담이 확대됐다"고 했다. 

SK그룹 전체의 지난해 설비투자(CAPEX) 규모는 35조원으로 전년 대비 11조7000억원 이상 늘었다. 지난해 말 그룹 전체 차입금 합계도 1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8년 대비 2.5배 늘어난 수준으로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주요 사업에 대해 CAPEX를 지속적으로 확대한 결과다. 이에 따라 작년 말 그룹 전체 FCF 적자 규모는 지난해 말 15조9000억원으로 최근 5년간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지주사인 SK만 봐도, 2021년 말 98조원이었던 부채는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약 124조원으로 25조원 이상 늘어나며, 부채비율이 164%를 기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SK는 앞으로 5년간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주력 사업에 247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여기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시설 투자와 R&D 비용이 모두 포함돼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에만 R&D 비용으로 역대 최대 수준인 4조450억원을 투자했다. 

이와 함께 2025년까지 친환경 분야에 23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SK가 선정한 5대 친환경 사업영역은 △에너지 전환 △산업 전환 △이산화탄소 처리 △전기차 소재·인프라 △친환경 디지털 제품·서비스 등이다. SK는 이 가운데 에너지 전환에만 12조40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SK가 R&D를 포함해 시설과 인프라에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에 비해 이것이 바로 재무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4분기부터 반도체 사업 적자가 흑자로 전환하고, 악화한 석유 정제마진도 다소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이차전지 관련 사업도 호조를 보이고 있어 점차 재무 구조가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미래사업 투자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자칫 세계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 그룹 재무구조가 현재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는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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