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금융검찰, 사과상자, 그리고 탄원서
<기자수첩>금융검찰, 사과상자, 그리고 탄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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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주(옛 그레이스백화점 회장) 로비의혹 사건 수사가 정관계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기억속에만 남겨질 줄 알았던 '사과상자'가 다른 곳도 아닌 '금융검찰'의 심장부인 금감원 고위인사에 대한 로비용으로 재등장했다. 충격적이다.
고액권을 발행해도 될 정도로 이 사회의 부패지수가 낮아진 줄 알았던 많은 국민들을 허탈감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이런 가운데 금감원 임직원 1,300여명은 지난 8일 '김중회부원장을 존경하는 직원들의 모임'이라는 탄원서를 통해 "부원장의 구속에 신중을 기해달라"며 "김 부원장의 비리 혐의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의 사과상자의 임자를 상대로 탄원서를 낸 것이다.  

금감원 임직원들은 평소 김 부원장이 인품으로 미루어 '설마, 그럴리가'했던 것같다.
일견 이해가 된다. 그러나, 씁쓸한 여운이 남는 것은 왜일까.
 
김중회 부원장과 개인적 친분이 없으니 왈가왈부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1,300여명의 직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만큼의 인물이었을까. 1,300여명의 직원 중에는 김중회 부원장과 단 한번도 마주앉고 얘기를 나눠본 적이없는 직원들이 대다수일 게다.
 
그렇다면 1,300여명 직원 모두가 '김중회 부원장에게 보내는 저 강력한 '지지'는 어디서 오는 힘인가.
 
 '조직 이기주의'라는 결론밖에 내릴 수가 없다. 금감원이 어떤 곳인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금융권을 좌지우지하는, 성역과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성역 안에서 지내는 임직원들은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기에는 실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또한 금감원 고위직을 맡은 인물이라면 그 입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기에 더더욱 '청렴'과 '결백'을 모티브로 삼아야 하는 그들이다. 
 
금감원 고위인사들이 직접적으로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만으로도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임직원들은 일단 신중한 자세로 자중해야 했다.
김 부원장을 믿고 싶더라도 만의 하나 '섣부른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행동했어야 한다   
 
섣부른 '제식구 감싸기'의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가. 
영장심사를 거쳐 김부원장이 구속됨으로써 이미 혐의는 어느정도 확인된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는 하지만, 이번 금감원직원들의 집단행동은 지켜보기조차 민망할 정도의 코미디와 같다. '금융검찰' 금감원은 그 이름과 권위만큼이나 엘리트들이 몰려있는 집단이기도하다. 
그런데, 그들이 단지 자신들의 '상사'라는 사실만으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막 진행되려는 상황에서 집단적으로 구명운동을 펼친 것은, 단순한 집단이기주의를 넘어서는 행동으로까지 보인다. 권위주의의 냄새마저 물씬 풍긴다. 그래서 더더욱 씁쓸하다.    
 
검찰로 불려나가는 김중회 부원장에게 "힘내십시요. 부원장님을 믿습니다"라고 외치기보다 이번 사건을 기회 삼아 '밝힐 것은 밝혀보자' 하는 자세가 '자기 식구'를 위한 올바른 길이었을 것이다.  

단 이틀만에 작성됐다는 이번 금감원 임직원의 성명서가 말해주는 것은 단순히 성명서 안에 찍힌 활자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사회가 여태 고치지 못한 '고질병'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고 한다고 해서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닐성 싶다.
 
남지연기자 lamanua@seoul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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