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7홈쇼핑 논란의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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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임초롱기자] 요즘 홈쇼핑 업계가 안팎으로 소란스럽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서비스산업 활성화 대책 가운데 중소기업 전용 채널을 위한 '제7홈쇼핑 신설'이 포함된 탓이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신규 TV홈쇼핑 채널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던 미래창조과학부가 돌연 태도를 바꾸면서 기존 사업자들이 반발하는 등 적잖은 잡음이 들린다. 그러나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7홈쇼핑을 통해 채널 간 경쟁을 유도하고, 국내 중소·벤처기업 판로를 확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내년께 신규 채널 개국을 허가한다는 입장을 밝혀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행보는 농수산물 전용 홈쇼핑인 NS홈쇼핑과 중소기업 전용인 홈앤쇼핑이 존재함에도 이들이 그간 제 구실을 못해왔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이들 홈쇼핑은 농수산물(60%)이나 중기제품(80%) 의무 편성비율은 충족하고 있지만, 시청률이 높은 '프라임 시간대'에는 중소기업 제품 대신 대기업 제품을 배치하면서 수익성 올리기에 매진했다. 정부가 요구한 중기제품 판매 방송 비중은 새벽시간대 등 비인기 시간에 방송을 내보내 형식적으로 편성 비중을 맞췄다는 얘기다.

수수료 문제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공개한 대형 유통업체들의 판매수수료율을 살펴보면 CJ오쇼핑·GS홈쇼핑·현대홈쇼핑·롯데홈쇼핑·NS홈쇼핑·홈앤쇼핑 등 국내 6개 TV홈쇼핑 사업자들의 평균 수수료율은 백화점(28.95%)보다도 높은 34.4%에 달했다. 이 가운데 NS홈쇼핑(28.6%)과 홈앤쇼핑(31.5%)은 평균치보다 낮긴 했지만 그 차이는 미미한 수준이다.

또 잊을 만하면 잇따라 터지는 '납품비리' 사건도 "(제7홈쇼핑을 통해) 경쟁을 유도하고, 시장 과점 현상을 해소할 것"이라는 미래부의 주장에 어느 정도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홈쇼핑 사업자들은 '등록'이 아닌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사업을 영위할 수 있어 시장진입 자체가 까다롭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적은 탓에 중소납품업체들은 매출과 인지도를 단박에 제고할 수 있는 홈쇼핑 판매방송 앞에 철저하게 을(乙)로 전락한다. 올 들어 롯데홈쇼핑 전·현직 임직원들이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겨 대거 기소되는 등 최악의 스캔들이 터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보다 앞선 2012년에도 국내 4개 홈쇼핑 업체가 연루된 대규모 비리 사건이 적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뇌물 수수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갔다.

반면에 기존 홈쇼핑업계는 신규 사업자 진입 시 과당 출혈경쟁으로 종합유선방송사(SO)에 지급하는 송출수수료가 폭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송출수수료 인상은 방송수수료의 동반 인상을 불러 일으켜 중소업체들에게 수수료를 좀더 낮춰줄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제7홈쇼핑'이 신설돼 봤자, 정부가 기대하는 판매 수수료 인하 등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논리다.

실제, 롯데홈쇼핑(옛 우리홈쇼핑)이 생길 당시 수수료는 25~30% 올랐고, 홈앤쇼핑이 합류했을 때도 비슷한 수준으로 치솟았다. SO수수료는 전년대비 기준으로 인상률을 결정하기 때문에 업계 부담이 갈수록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덕분에 지난해 6개 홈쇼핑 업체들이 지상파 채널 사이의 '황금채널'을 배정받기 위해 지급한 SO수수료는 9800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했다. 이는 2009년 4100억원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액수로, 이들 회사의 영업이익을 모두 합한 금액(7700억원)보다 많다.

아울러 공영 홈쇼핑 채널 신설이 중기 성장을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업계의 뒤엉킨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데자뷰(Deja vu)같다는 생각이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사실 롯데가 2006년 당시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 채널이던 우리홈쇼핑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이 시장에 진입할 때도, 3년여 전 제6홈쇼핑인 홈앤쇼핑이 개국할 때도 각 업계마다 이와 똑같은 주장과 논란이 반복됐었다.

롯데홈쇼핑의 전신인 우리홈쇼핑은 2001년 개국 당시 중기제품 판매방송을 65% 이상 내보내는 조건으로 허가받았다. 홈앤쇼핑도 마찬가지로 2010년 중기제품 판매방송 비중을 80% 이상 유지하는 조건으로 방송 승인을 받았다.

당장 정부 승인을 받기 위해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역시 이같은 고질적 병폐부터 싹을 잘라야 함에도 실효성 없는 대책만 늘어놓는다면 '제7홈쇼핑'뿐 아니라 제8홈쇼핑, 제9홈쇼핑을 신설한다고 해도 똑같은 상황만 되풀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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