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양극화 심화..'상생' 공염불?
건설업계 양극화 심화..'상생' 공염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설현장 불공정거래행위 여전 [서울파이낸스 임해중 기자] 최근 정부 여당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며 하도급법 강화에 분주한 모습이다. 정부차원에서 '상생'을 화두로, 바른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장에서의 불공정거래행위는 끊이질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공사를 진행하며 공사대금을 장기어음으로 끊어주는 고질적인 관행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중견건설사들의 유동성을 심각하게 옥죄고 있다.

대기업으로부터 아파트 건설공사를 하청 받고도 임금을 지불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돼 부도를 맞은 바 있는 건설업체 관계자는 "보통 건설사가 발주처로부터 공사비를 현금으로 직접 받아 가면 하도급 업체에게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기간의 어음을 끊어주는 일이 다반사"라며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금으로 직접 대금을 받고 하도급업체에게는 어음을 끊어주는 불합리한 일이비일비재 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우리 회사의 경우에도 하도급을 준 회사가 SH공사에게 공사비를 현금으로 받은 뒤 우리에게는 어음을 끊어줘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라며 "상생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지만 건설시장만은 상생과 동떨어진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불공정거래행위 근절 및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행보가 바빠지는 모습이지만 현장관계자들의 시각에는 여전히 온도차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시장은 대형 건설업체로부터 중견 건설업체, 중소 건설업체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를 이루고 있고 공종도 매우 다양해 편법·관행이 판을 치며 중소업체들만 몸살을 앓고 있다.

■ 불공정 거래 오히려 늘어

최근 감사원이 최저가 저가심의 부실 적발을 하며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지만, 실제로 이런 관행을 제도적으로 막을 장치가 마련돼지 않아 중견건설사들의 시름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특히 내년 공공물량발주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고, 건설물량이 감소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형건설사가 중소업체를 상대로 손실을 전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모 일간지가 자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1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83명(58%)이 '정부 발표 이후 대기업의 불공정거래가 줄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응답자들(130명)만을 놓고 보면 대기업의 불공정거래가 여전하거나 오히려 심해졌다는 응답 비율이 64%에 달한 셈이다.

이처럼 불공정거래행위가 오히려 늘었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은 하도급공사를 겹겹이 입찰에 부쳐 공사대금을 깎는 이른바 '후려치기'가 대형건설사들 사이에서 횡횡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제재 수위가 너무 낮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올 하반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서 대형건설사 20개 업체에 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51억 원 상당의 위반금액을 하도급업체에게 지급하도록 조치했지만 이정도 수준으로 불공정거래를 일소할 수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었다.

이와 관련 G건축사무소 관계자는 "다중입찰을 통해 하도급업체를 선정하게 되면 하도급공사비는 원청업체가 산정한 실행예산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다"라며 "문제는 정부차원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막상 현장은 전혀 변하지않았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오히려 이 같은 불공정행위가 늘고 있어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들까지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 수법은 갈수록 지능화되는데…근심만 커져

한편 뿌리 깊은 관행처럼 내려오던 건설업계의 불공정 거래 행위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도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불공정 하도급 유형은 하도급 대금이나 지연이자를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다. 원청업체는 건설 기성고 파악 뒤 60일 이내에 하도급 대금을 지급해야 하고 기한이 넘으면 지연이자까지 줘야 하지만 기한이 지나도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버티는 수법이다.

이는 향후 갑인 원청업체에게 일을 받아야만 하는 하도급업체 입장에서 대금에 대한 요구를 강하게 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 대형 건설사의 대표적인 수법 중 하나다. 또 공사대금대신 미분양 아파트를 하청업체에게 주는 이른바 대물변제 수법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과거에도 아파트 가격을 빼고 공사대금을 주는 대물변제 방식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공사대금은 대금대로 주고 아파트는 별도 계산을 치러 하도급업체에게 떠안기는 등 그 방법이 지능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법은 원청업체가 부도가 날 경우 대금을 채권이나 어음으로 받는 것과는 다르게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아파트를 고스란히 날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아울러 대형건설사가 발주처로부터 현금으로 대금을 지급받고서는 하청업체에게는 어음으로 결제하는 관행도 고질적인 병폐로 손꼽히고 있다.

이처럼 대형건설사들에 의한 불공정 거래는 경영 환경이 열악한 하도급업체의 유동성을 옥죌 수밖에 없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 "사실 건설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거래가 늘어단다"라며 "대형건설사 하나에 수많은 하도급업체가 연관된 것을 감안하면 그 피해액은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제도 정비만이 '해법'

관계자들은 올 하반기 공정위가 20개 건설사를 불공정 거래행위로 적발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 공정위에 적발된 사례에 따르면 국내 중견건설사를 대표하는 반도건설 등 8개 업체는 건설공사를 위탁할 경우 공사대금 지급을 보증해 줘야함에도(하도급법 제13조) 관련 하도급 업체들에게 지급보증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남광토건은 관련 하도급업체들에게 법정기일을 초과하는 기일의 장기어음을 발행하고 그에 따른 어음 할인료 22억원을 미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이처럼 선급금 지연이자 미지급이나 하도급 대금 조정 계약 지연 등 국내 대형건설사들 사이에서 갖가지 불공정 거래가 횡횡하고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건설업계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원천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관련법 정비도 필수겠지만, 대표 건설사들의 도덕성도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말로만 상생을 외치는 것보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한편 정부차원에서 불공정 거래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관계법령 개정을 모색하고 있지만, 여·야간 입장 차이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 현장관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저가 하도급 결정 등과 같은 대형건설사의 횡포가 상도를 넘어가고 있지만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관계법령이 미비해 악순환의 고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불공정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관계법령이 완비돼있지 않고, 과징금 규모가 너무 작아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 상생을 위해서는 법령정비가 우선이라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