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조아 기자] "고객님께선 해당 사항이 없으시니까 여기부터 저기까지 '아니오'에 체크하시면 됩니다."
최근 금융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방문한 은행 네 곳 중 세 곳에서 이같은 안내를 받았다. 선택지에 대한 정답을 배정 받기가 무섭게 활자가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주문에 걸린 것처럼 안내받은 대로 체크를 마치자 빠르게 금융상품 가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든 '속도'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인터넷, 교통수단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일상에 녹아든 '빨리'는 투자상품 가입 때도 마찬가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시행 이후 설명 의무가 강화되다 보니 계좌를 개설하고 상품을 설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이 넘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며 그냥 가는 고객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금소법은 불완전판매가 문제가 된 파생결합펀드(DLF)와 사모펀드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2021년부터 시행됐다. △기능별 규제 체계로의 전환 △6대 판매 원칙의 확대 적용 △금융소비자에 대한 청약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 보장 △분쟁 조정 절차의 실효성 확보 △징벌적 과징금을 통한 사후 제재 조치 강화 △금융교육의 법제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설명 의무 위반에 따라 금융소비자가 금융회사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고의와 과실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을 금융회사가 부담하도록 했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행된 금소법은 상품을 가입하기 위해 긴 시간이 소요되면서 판매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불편을 야기시켰다. 고객을 대한 응대에 필요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비대면을 통해 상품 가입을 하는 고객들도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고객층들은 현장 방문을 통해 상품을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 긴 시간 상품설명을 듣는게 힘들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문제는 해당 규제가 시행된지 3년 만에 또 다시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 논란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최근 홍콩H지수가 급락했고, 올해 H지수 ELS 전체 잔액의 79.6%인 15조4000억원의 만기가 도래하게 됐다. 해당 상품의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이뤄졌다는 논란이 발생했고, 금융당국은 주요 판매사인 KB·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등 5곳의 은행과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 7곳을 대상으로 현장 검사에 나섰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열린 국회 정무위에서 "금소법이 시행된지 3년 지난 시점에 금융투자 상품을 어떻게 분류하고 어떤 창구를 통해 판매할 때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하고 설명해야 할지, 이번 기회에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검사 이후 제도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투자상품에서 발생한 피해를 판매사에게만 묻는 것은 부당하다. 금융상품을 거래할 때 소비자 역시 거래의 주체이며, 계약의 체결과 이행, 결과에 따른 최종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는 '자기책임 원칙'은 자본시장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전한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불완전판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를 점검하고 강화할 필요는 있다.
줄줄이 발생한 금융사고는 상품, 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트린다. 그리고 금융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자본시장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하기 위해서 금융소비자와 업계실무진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검토해, 헛되게 소모되는 시간을 줄이고 방식을 변화해 효율성을 높이는 형태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