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법사금융 뿌리 뽑으려면
[기자수첩] 불법사금융 뿌리 뽑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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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지난 6월,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소액을 빌려주고 연 5000%가 넘는 살인적인 이자를 받아 챙긴 불법 사금융 범죄조직이 경찰에 검거됐다. 일명 '강실장 조직'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조직은 생각보다 더 촘촘하고 체계적이었다. 총책인 '강실장'을 필두로, 행동강령 교육과 실적관리를 맡은 상급관리책, 채무자명단과 자금관리를 하는 총무팀이 있었고, 조직원들은 대출 상담과 수익금 인출, 콜센터까지 점 조직 형태로 역할을 구분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이 범행 표적으로 삼은 이들은 기존 금융권 대출이 어려웠던 서민들이다. '연체자, 누구나 대출 가능'이라는 광고로 서민들을 유인한 후, 비대면으로 50만원 미만의 소액을 빌려주고 살인적인 이자를 요구했다.

조직에 25만원을 빌린 한 피해자는 불과 3개월 만에 갚아야 할 돈이 1억5000만원으로 불어나기도 했으며, 40만원을 빌린 또 다른 피해자는 1년여간 원금·이자 돌려막기를 통해 7억원에 달하는 돈을 갚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범죄를 작정한 이들이었기에 행동은 거침이 없었고, 그야말로 악랄했다. 채무자 가족들을 상대로 살해 위협을 일삼는다거나 나체 사진을 요구하는 등 협박은 기본이었다.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올 때면 수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조직원을 허위로 자수시키는 등 치밀함까지 보였다. 

강실장 조직은 결국 적발됐지만, 이는 불법 사금융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다 지속되는 고금리 현상은 최근 무등록 대부업 등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신용취약계층을 상대로 한 불법 사금융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금융감독원 센터에 상담·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건수는 6784건으로 5년래 최대 수준을 나타냈다. 2019년 2459건에서 △2020년 3955건 △2021년 4926건 △2022년 5037건 등으로,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성 착취를 동반한 신·변종 불법 사금융과 함께 청소년 대상 대리입금·휴대폰깡 등 피해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중의 분노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이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건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이 금감원을 방문,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서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이 총출동한 자리에서 '불법 사금융 근절'을 외쳤다. "약자의 피를 빠는 악질적 범죄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평생 후회하도록 강력하게 처단해야 한다"는 극한 발언도 아끼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이 금감원을 직접 찾은 건 12년 만이라는 점에서, 그만큼 정부가 불법 사금융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낸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향후 금융 당국과 관련 부처의 불법 사금융 단속이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발언처럼 민생 약탈 범죄로부터 서민과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범죄 수익은 차명재산까지 모조리 추적·환수하고, 광범위하고 강력한 세무조사로 불법사금융으로 얻은 수익을 단 1원도 은닉할 수 없도록 하는 것도 절실하게 필요한 조치다. 

다만 엄포와 단속 강화 등 조치 못지않게 중요한 건 악질적인 민생범죄에 서민들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취약계층을 위한 대출 상품의 문턱을 낮추고 지원 범위·규모를 늘리는 방안과 함께 필요하다면 제도권 밖으로 밀리는 저신용자들이 없도록 연동형 최고금리제 등에 대한 논의도 뒤따라야 한다.

어려운 상황을 틈타 불법 사금융의 뿌리가 깊고 끈질겨진 만큼 더욱 정교하고 세심한 서민금융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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